미술, 과학을 탐하다 - 우리가 궁금해 하는 그림 속 놀라운 과학 이야기
박우찬 지음 / 소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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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과학자들의 발명품이나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 사고의 전환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하나 둘 따지고 보면 그 새롭기만 한 것은 앞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심혈을 기울려 만들어 온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처럼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 말이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분야가 예술분야가 아닌가 한다. 예술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시간과 싸움하며 만들어내는 예술품 모두는 순수하게 그 예술가의 새로운 시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예술가가 살았던 그 시대의 모든 학문의 총화가 모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질적 전환을 이룬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하면 서양미술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시각은 미술사를 따로 거론하지 않더라도 서양미술이 차지하면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서양미술이 오늘날처럼 이러한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다양한 사조를 형성하며 눈부신 예술작품을 남긴 서양의 예술가들이 그런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점은 무엇보다 특출한 예술가의 독창적인 노력도 물론 중요한 것이 되지만 더불어 서양의 물질문명의 변화와 발달이 큰 몫을 하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미술, 과학을 탐하다’는 서양미술에 근간을 두면서 미술작품에 담긴 과학의 성과를 찾아내고 미술이 다양한 사조를 형성하며 발달해온 배경과 과정을 살피고 있다. 이야기의 순서는 미술과 과학의 상호관계를 바탕으로 유명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 이야기의 중심이 미술표현기법의 변화과정이다. 저자는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기는 일’을 미술의 꿈으로 보았다. 하지만,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표현기법이 당시의 과학의 성과와 결합하여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 내고 그 꿈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다. 

책의 이야기 흐름은 미술사조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새로운 표현기법의 필요성이 과학을 원하고 있었다는 점, 그런 미술가들이 과학의 성과와 만나 당시까지 실현할 수 없었던 한계를 차례로 극복해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삼차원의 현실공간을 이차원의 평면에 실감나게 옮기란 대단히 어려운 점이었지만 이를 해결해간 것이 바로 과학의 성과를 도입한 결과 때문이다. 

원근법, 해부학, 명암법의 도입으로 눈에 보이는 현실을 화폭에 담아내기에 성공한 화가들은 그것에 멈추지 않고 이차원의 평면을 실체감을 불어넣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이 있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 아니라 이상화 시킨 것이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현실의 직접적인 재현을 이룰 수 없었다. 

여기에서 미술이 과학을 꿈꾸게 된다. 수학, 사진, 역동학, 광학 등의 힘을 바탕으로 실재하는 것을 만지듯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대 관건은 질감의 표현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빛에 대한 탐구가 요구되었다. 나아가 순간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운동성과 시간을 평면에 재현하기에 이른다. 이후 미술과 과학의 만남은 분석과 상대성이론, 정신분석을 넘어 구조와 속도, 사차원, 무의식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도 표현하기에 이른다. 

오랫동안 미술의 꿈이었던 현실의 재현이 실현되는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처럼 미술과 과학의 만남은 현대 사회의 화두가 되는 통섭이나 융합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시각에서 저자의 의도와는 동떨어지지만 내가 주목하는 점은 서양미술이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꿈을 이뤄가는 동안 동양의 미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점이다. 이를 저자의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찾아본다. 산업혁명을 비롯한 급속한 사회의 변화가 이를 담고 표현하려고 했던 미술로 이어져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쳤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동양은 그러한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양 미술에 대한 번역서가 넘쳐나는 시대에 보기 드물게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인 저자가 미술의 지평을 넓히고자 집필한 저술이다. 저자의 글쓰기는 어려운 이야기를 그림과 더불어 알기 쉽게 표현하고 있다. 미술에 관심 있고 서양 미술사조의 흐름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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