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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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회고할 것인가
삶을 회고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질적인 변화가 있는 시기일 것이다. 이는 나이의 많고 적음에 있지는 않다. 삶의 특정한 시점에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르거나 더 깊은 내용을 담아나기 위한 성찰의 기회이기에 생을 마감하는 시점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삶을 회고한다면 그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건이나 사고 등 회고할 수 있는 요소들은 많고 많겠지만 그 모든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 특별한 관계를 맺어온 사람일 것이다. 한사람을 만나면서 극적으로 삶의 변화를 겪은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그런 사람을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그 사람들을 회고한다면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폴 오스터의 작품 ‘보이지 않는’는 생의 마지막에 지난 삶을 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7년 예순 살을 맞이한 주인공 워커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다. 그는 인생을 회고하며 ‘봄’, ‘여름’, ‘가을’이라는 세편의 글을 남긴다. 이 세편의 글은 각기 시점을 달리하며 나, 너, 그라는 표현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봄’은 그의 인생에서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청춘의 시절을 보내던 시기 자신이 재학하고 있는 대학에 프랑스에서 교환교수로 온 보른과 그의 연인 마고를 만나면서부터 시작하여 보른이 살인을 저지르고 프랑스로 돌아가기까지 세 사람이 겪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살인을 목격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미온적인 태도에 실망한 워커는 이로부터 굴곡 많은 인생행로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여름’은 혼란스러운 삶의 격동기를 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른과 마고가 떠난 뒤 워커는 누나 그윈과 함께 여름을 보낸다. 둘은 오래전에 죽은 동생을 추모하며 어린 시절 함께한 위험한 실험을 생각해내고 서로 마음을 확인한다. 그들은 금기이며 터부시되어온 일을 벌이며 폭풍 같은 여름을 보낸다. 이 여름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훗날 누나 그윈에 의해 부정되는 등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제공한다.  

‘가을’은 워커가 프랑스에서 보낸 시기에 해당된다. 프랑스로 유학을 간 워커는 마고를 떠올리며 만나게 되고 우연히 보른과 마주치며 또 다른 전환점을 예고하고 있다. 대학교수라지만 정체가 의심스러운 보른에 대한 복수를 꿈꾸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에 의해 추방되기까지를 그려가고 있다. 

이렇게 구성된 세편의 이야기는 40여년이 흐른 뒤 워커에게 연락은 받은 대학친구에게 전해지고 그로부터 누나 그윈이나 프랑스에서 알고 지냈던 세실과 연락하게 되고 그로부터 워커가 남긴 이야기의 세편에 대한 의문점을 해결해가고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한 사람의 회고록이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대부분 사실이라고 확인되지만 유독 여름에 해당하는 내용은 그 당사자로부터 부인된다. 이는 이해할만하다.  

이 작품은 특이한 구성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세 명이며 40년을 건너뛰며 진행된다. 회고록의 주인공인 자신, 그의 친구의 시각 그리고 40년 전 짧게 만났지만 깊은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사람이 주인공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신선함 느낌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 의붓딸에게 자신의 회고록 컴퓨터 파일을 지울 것을 유언으로 남기면서도 친구에게 사본을 보내는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알 듯 모를 듯 하지만 어쩜 이런 것이 삶이 아닌가도 싶다.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단연 으뜸이 아닐까? 이성의 작용이 미치지 못하며 확인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것, 이것은 바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을 마감하는 시기 살아온 삶을 돌아볼 때 이 ‘보이지 않는’ 무엇이라도 있다면 그 삶은 어떤 규정을 내릴 수 있을까? 자신의 삶도 이럴진대 다른 사람의 삶을 볼 때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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