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왜? 2 - 박제를 넘어 영원으로 날다
임종욱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각자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각자가 느끼고 실생활에 영향을 받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의 한 사건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속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은 것 역시 이와 같을 것이다.  

미지의 동경 생활에 지쳐가던 이상은 하숙집 주인의 이야기에서 비로써 자신의 조국 조선과 조선 사람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조선의 독립투쟁과 상해임시정부, 김구를 비롯한 항일투사들에 대한 그간의 시각을 재정립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여기에 ‘까마귀’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하는 항일투사와의 만남은 그런 이상의 생각을 확립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 대륙에 대한 침략적 야욕을 실현하려는 시기가 1930년대 중후반이다. 이 시기에 일본에 있던 조선인은 이중적인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때만의 문제가 아님을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시간을 뛰어 넘어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 뇌리에 박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2권의 이야기전개는 빠르게 진행된다. 천황암살자 까마귀의 존재는 이상이나 그를 잡으려는 군부와 경찰의 관련자뿐 아니라 현시대에 일본을 방문한 소설가 정문탁을 둘러싼 이야기의 전개와도 맥을 같이하여 한국과 일본의 민족적 감정이나 양국 국민들의 생각 속에 내재해 있는 모습을 비교하여 살펴볼 수 있게 하고 있다.  

물질문명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그 변화속도는 빠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좌지우지하는 사상의 변화는 그렇지 못하다. 반세기가 훌쩍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미해결로 남아있는 한일 양국의 문제는 스포츠 경기에서 보여주는 국민들의 열광적인 모습에서처럼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뿌리 깊은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국가와 민족이라는 집단과 그 민족의 구성원인 개별 사람들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개별적인 사람들의 행동 속에 반성과 속죄하는 모습이 이를 대변하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전체와 대치될 수 없음은 명백하지만 때론 이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선 역시 고려되어야 하는 사항일 것이다.  

작품 속에서 정문탁이라는 소설가는 바로 그 점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국가 간의 대치상황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그 사회를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는 지식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서도 존재하는 보수 우익들의 모습을 통해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역시 아직 극복하지 못한 감정의 수준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병보석으로 석방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이상에게 하숙집 딸이 찾아온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상은 ‘까마귀’에 대한 하숙집 딸의 이야기에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본다면 일본이나 일본인, 조선이나 조선인을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라고 파악한다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일을 할 뿐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더라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있다. 민족이나 국가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사람의 기본적 권리를 파괴하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환영받지 못할 행동일 것이다. 한 세기가 흘렀다. 그사이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사람들 뇌리에 남아 민족과 민족의 대립 상황을 지속시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민족적 과제로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색을 필요하고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시대를 불행하게 살다간 천재 이상에 대한 알 수 없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작가가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은 해결되지 못해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에 대해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정립되어야 한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를 살펴 오늘을 딛고 미래의 희망을 찾고자 함에 있기에 이상이라는 지난 사람을 되살리는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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