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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을 훔치다
몽우 조셉킴(Joseph Kim)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나도 훔치고 싶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은 다양한 통로가 있다. 직접 그를 대면하며 경험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일 테지만 때론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간접적인 통로로 보는 것도 있다. 무엇이 한 사람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인지 모호하긴 하지만 다양한 통로를 통해 두루 살펴야 한 사람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따라 배우며 그 사람의 정신을 훔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이중섭을 훔치다’ 이 책은 한 화가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이중섭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누군가를 훔치고 싶을 정도로 강한 느낌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에 그런 간절함이 어떨지 상상만으로 그치지만 저자 몽우 김영진의 그러한 갈망이 이중섭이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라면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몽우라는 사람의 눈과 마음에 들어온 이중섭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중섭(1916~1956)’이라고 하면 미술시장에서 수 십 억 원에 달하는 경매가를 기록한 화가, 조금 남다른 삶을 살았던 화가, 가족과 떨어져 살며 가족을 그리워했던 화가 등으로 기억된다. 이런 단편적인 사실을 넘어 화가 이중섭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뉴스에서 전하는 수준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병약한 몸으로 남들과는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저자 몽우는 아버지가 사온 ‘대향이중섭화집’에서 이중섭과 처음 만나게 된다. 강한 끌림으로 이후 이중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 영향을 받아 그림에 빠져든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훔치고 싶다’는 말은 몽우가 이중섭의 그림을 보고 그의 그림을 훔치고 싶을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았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러기에 이후 저자의 행보는 이중섭의 그림을 닥치는 대로 따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중섭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이중섭 그림 복원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중섭의 그림을 직접 대할 기회를 가졌다. 이 기회는 그가 사랑한 이중섭의 삶과 그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은 몽우라는 화가가 해한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편협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이중섭 평전 못지않은 상세한 내용과 당시 상시 상황 등을 묘사하는 저자의 깊은 배려는 이중섭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올바로 이중섭의 삶과 예술 세계를 알게 하는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소, 닭, 비둘기, 까마귀, 어린아이는 군동화와 은지화 등 이중섭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들이다. 이중섭이 이러한 것들에 주목한 이유가 뭘까? 그런 그림 소재들이 담고 있는 내면의 소리는 무엇일까? 등에 답하는 과정으로 그려지는 이중섭에 그림에 대한 탐구과정은 화가 이중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그림과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저자 몽우가 이중섭에게서 훔치고 싶은 것의 내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저자의 이중섭에 대한 기본 시각은 세 가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특한 화풍을 이룩한 화가 이중섭, 아내와 자식을 사랑한 가장 그리고 민족의 암울한 시기를 극복하고자 애쓰는 민족적 시각이 그것이다. 이렇게 이중섭을 살피는 과정에서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상황이 빠짐없이 살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여, 광기어린 천재화가라고 불리는 이중섭에 대해 그런 광기의 모습 이면에 숨어 있는 진정한 이중섭의 마음을 찾아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보여 진다.
“이중섭의 그림은 내 정신을 온통 빼앗아 가버릴 정도로 한때 내 삶을 마비시켰다. 나는 스스로를 불태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의 치열한 정신을 흠모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가장 불안정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극한의 예술적 열정으로 걸작을 만들어낸 그를 존경했다”
저자가 화가 이중섭에게 이토록 강한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과 이중섭의 삶에서 공통된 무엇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겉모습은 다를지라도 지극히 외로웠을 두 사람의 영혼이 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