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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박제가 지음, 이익성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학문의 기본 정신을 배우다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모두가 옳다고 할 때 그르다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이 그 의미 속에 포함된다면 우리 역사에서 그러한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하지만, 같은 의미일지라도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당리당략에 의한 말이라면 숨은 뜻을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가까운 조선의 역사에서 당당하게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들이 유독 많았던 시기가 영조, 정조 때로 보인다. 인진왜란의 혼란을 일정정도 극복하고 오랜 파쟁도 영조의 탕평책으로 인해 누그러졌던 때가 바로 흔희들 문예부흥기로 이야기하는 그때이다. 특히, 정조왕의 개혁적 정책에 힘입은 세력이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북학파(北學派)가 활동하던 시기다. 북학파의 중심에는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이 있었다. 북학이라는 말은 맹자에서 “진량은 초나라 사람이다. 그는 북쪽으로 유학하여 북방의 학자들도 그보다 나은 사람은 없었다”라는 구절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들 중 초정 박제가(1750~1805)는 박지원과 함께 북학파의 거장으로 두드러진 활동을 펼쳤다. 1778년 사은사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후 ‘북학의’를 지었다. 박제가는 누구보다 급진적인 정책을 제시하며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본받아 생산 기술을 향상시키고, 통상무역을 통하여 이용후생을 실현’할 것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저서로는 ‘정유집’, ‘북학의’, ‘정유시고’, ‘명농초고’ 등이 있다. 이 책은 박제가가 저술한 ‘북학의’를 을유문화사가 원문을 번역하여 1971년 발행한 것을 30여년이 지난 후 새롭게 발간한 개정판이다.
북학의는 크게 내편, 외편, 진북학의로 세편을 구성되어 있다. 내편은 수레, 성, 벽돌, 궁실, 도로, 교량, 목축 등 서른아홉 가지 사항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외편에는 밭, 거름, 농업, 잠업, 과거론, 재부론, 군사론, 장례, 절강 상선과 통상하는 문제 등 열여섯 가지 박제가의 진솔한 사상이 담겨 있다. 진북학의는 박제가가 영평현령으로 있을 때 정도의 왕지에 의해 내, 외편에서 농사와 관련된 항목을 뽑아 여기에 수리, 지리, 모내기, 농기구 등 항목을 추가하여 다시 작성한 것이다.
북학의를 통해 본 박제가의 글은 진솔하고 담백하다. 주장하는 바에 대해 자세한 사항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지만 고루하거나 군더더기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조선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철저히 실용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모습이 돋보인다. 또한 청나라의 문물을 보고 쓴 것이지만 당시 동북아 삼국인 청나라, 조선, 일본의 현실을 비교분석하고 있는 점이 더 철저한 실학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인다.
‘말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할 말이 많을 것이다’고 한 것은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조선의 현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무작정 청나라의 문물을 따라가자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의 글 내면에는 바로 조선 백성들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고 그러한 현실을 극복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급진적인 사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역사에서 가정은 불필요한 것이지만 그렇기에 가정을 통해서라도 달라진 현실을 기대하고 싶은 것이 사람 아닌가 싶다. 만약 박제가의 이러한 선진적인 사상이 받아들여졌다면 무척 다른 역사를 만들어 왔을 것이라는 점에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시대를 뛰어 넘는 급진적인 사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면 역사의 진보는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박제가의 개혁사상은 학문이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오늘날 인문학의 여러 우려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저히 현실을 기반으로 둘 때 그 의의를 살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박제가가 현시대를 보면 어떨까? 그가 그토록 바랐던 물질적인 혁신은 그가 상상하는 것을 뛰어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이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