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닮고 싶은 사람 이덕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다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쩜 ‘그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여기서 ‘그냥’이라는 대답은 좋아하는 이유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많고 많은 이유 중에 딱히 꼽아 대답해 주기가 마땅치 않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나 역시 ‘그냥’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들이 책을 통해 얻었던 행복은 한 사람의 삶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나 후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우리 역사에서 그러한 사람으로 조선 후기 청장관 이덕무와 해강 최한기를 기억한다. 이덕무는 저자출신으로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책을 탐했던 사람이고, 최한기는 물려받은 재산을 거의 책을 모으는 것에 쏟아 부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몇 년 사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정조왕의 발탁에 의해 그 진가를 발휘했던 이덕무에 대해서는 다소 알려지고 있다고 보인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간서치(看書痴)라는 별명으로 더욱 알려졌다. 그야말로 책에 미친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덕무 스스로 지어 붙인 것이다.

이 책 ‘책에 미친 바보’는 바로 그 이덕무의 문집들에서 산문을 선별하고 엮어냈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다.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등과 교유하면서 박학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대학자이다. 한시로 청나라에까지 그 명성을 떨칠 만큼 뛰어난 문장가였던 이덕무의 삶은 후대를 살아가는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형암(炯庵), 아정(雅亭), 청장관(靑莊館)이라는 호를 사용했으며 그가 남긴 문집으로는 영처문고, 아정유고, 청장관전서 등이 유명하다.

‘책에 미친 바보’ 이 책은 그가 스스로를 불렀던 간서치(看書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이덕무의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섬세한 감정과 일상을 살아가며 자신과 교류했던 벗들에 대한 솔직하고 따스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산문들을 모았다. 크게 여섯 체계로 구분하여 엮은 산문들에는 이덕무 스스로가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 간서치라 스스로를 칭한 책을 읽는 이유, 이덕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장과 학풍, 자신이 마음과 학문을 나누었던 벗들과의 이야기, 유학자로 스스로 자신을 경계하며 선비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던 선비 이덕무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던 마음들이 오롯히 담긴 글들이 담겨 있다.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되리라.”

간서치 이덕무가 책을 대하는 태도다. 이 책에 담긴 산문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이덕무는 그야말로 책에 빠져 살았던 사람임을 여실하게 알 수 있다. 책을 대하는 자세와 책을 읽는 방법, 그리고 책을 읽은 후의 감상,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고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본받고자 하는 이덕무의 책 탐이 어떤 의미인지 새겨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덕무는 마냥 책읽기만 한 것이 아니다. 책을 읽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수양하는 유학자의 모범을 보였다. 사람이 살아가며 진실로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책을 통해 배우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철저하게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한 책읽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소설에 대한 생각을 보면 잘 나타나고 있다고 보인다.

조금 크다 싶은 서재를 만들었다. 시골로 삶의 공간을 옮기는 과정에 가장 중점을 둔 공간이다. 서재를 만들며 염두에 두었던 것이 이덕무의 책을 읽는 독서讀書, 책을 보는 간서看書, 책을 간직하는 장서藏書, 책의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초서抄書, 책을 바로잡는 교서校書, 책을 비평하는 평서評書, 책을 쓰는 저서著書, 책을 빌리는 차서借書, 책을 햇볕에 쬐고 바람을 쏘이는 폭서曝書의 구서라는 말이었다.

이 책과 비슷한 제목의 소설책이 있었다. ‘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이 지어 2005년 보림에서 출간한 소설책으로 부제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처럼 중심이 벗과의 사귐에 있다. 이 책을 통해 실학자와 문장가로 이덕무 보다 인간 이덕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후 그가 나오는 책이라면 무조건 수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선조들이 남긴 우리글을 접하는 기회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이덕무는 바로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책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했던 사람이다. 하여 그의 삶을 닮고자 했다. 

탁월한 문장가 이덕무의 산문을 현대인들이 읽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번역한 글이 돋보이는 책이다. 아쉬운 점은 책머리의 박제가 글에 중복되는 단어와 자화상 해설부분에 있는 이덕무의 죽은 년도에 대해 잘못된 표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부록에 실린 이덕무 연보,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원문은 이덕무와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실린 원문은 비록 한자 실력이 미치지는 못하지만 짧은 원문과 번역문을 번갈아 보며 원문이 주는 매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역자의 해설이 있어 본문을 이해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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