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제색도 - 빛으로 그리는
이갑수 지음, 도진호 사진 / 궁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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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을 보는 사람의 마음
날마다 지나치는 풍경이 어느 날 아주 정답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딱히 이유를 설명할 무엇도 없지만 그 풍경에 마음이 가는 것이다. 그날 이후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게 된다.

비슷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갑수가 주목하는 풍경하나는 다분히 의도적인 바라보기다. 인왕산이 자리한 곳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가 이사를 하면서부터 자주 접하는 인왕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연유로 해서 조선시대를 살았던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남긴 ‘인왕제색도’라는 그림 한 점에 주목하게 된다. 260년 전 화가의 눈에 들었던 인왕산의 모습과 너무도 닮은 산 모습을 보면서 지난 시간과 더불어 함께해온 산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출발한 인왕산 바라보기는 2009년 9월부터 가을에서 시작하여 다시 가을이 올 때까지 한 해 동안 한 곳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도진호라는 사진가는 사진으로 인왕산의 모습을 담고 이갑수는 시시때때로 산을 오르며 글로 인왕산을 담았다. 이 둘이 만나 사계절이 지나는 동안 인왕산과 함께한 저자의 마음자리가 책으로 출간된 된 것이다. 비로 이 책 ‘신인왕제색도’다.

‘신인왕제색도’의 도화선이 되었던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국보 제216호로 지정되었다. 정선의 나이 76세 때인 1751년(영조 27)에 그려진 작품이다. 겸재 정선의 평생의 벗이었던 사천 이병헌이 죽자 벗을 애절한 마음을 담은 그림으로 비온 뒤 안개가 피어나는 순간을 동쪽에서 멀리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인왕제색도는 중국화풍에서 벗어나 조선 산하를 있는 그대로 담은 진경산수의 대표적인 걸작이라고 한다. 화제에 ‘인왕제색(仁旺霽色) 겸재(謙齋) 신미윤월하원(辛未閏月下沅)’이라고 묵서되었고 그 밑에 정선(鄭敾) 원백(元白)이란 방인(方印)이 찍혀 있다.

‘신인왕제색도’에 담긴 모든 인왕산 모습은 바로 겸재 정선이 살았던 곳에서 바라본 모습이라 더 그림에 충실한 시각이 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왕산 기슭에 사람들이 모여산 것은 오늘날의 일이 아니다.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릴 당시에도 그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저자 이갑수는 바로 인왕산 아래 둥지를 틀고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왕산과 함께 이야기 하고 있다. 자연의 변화는 사람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준다. 구름, 안개, 비, 눈이 오는 동안 인왕산 아래 사람들이 모습이 실감나면서도 따스한 애정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떠 하나의 시각이 제기 되었다. 서울의 한 지점에서 인왕산을 찍듯 인왕산에서 서울의 한 지점, 서울의 풍경을 찍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인왕제색도’와 한 몸인 ‘인왕산 일기’가 추가되었고 한다. 

사진 속 인왕산은 그 모습이 그 모습 같다. 또 같은 사진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도 같은 사진이 없다. 우리들 삶도 사람마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똑 같은 삶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인왕제색도가 그려진 2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왕산 모습은 그리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슭에서 삶의 희노애락을 겪으며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 후손들이 선조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더 시간이 지난다면 사라진 그들처럼 지금 산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사라질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도시에도 우뚝 솟은 산이 있다. 일천 미터가 넘는 산이지만 위엄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넉넉한 품에 사람들을 품어 왔고 또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은 어머니와 같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어온 그 기슭에 많은 사람들이 깃들어 살아간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을까? 그 산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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