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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소설
송수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이 위험하다
역사를 가정한다는 것만큼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일에 대해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지난 일이 오늘의 일에 깊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끊임없는 가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한 가정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
역사적 인물을 기억하는 것으로는 살피고자 하는 사람의 생애를 걸쳐 그가 이룩하고자 했던 뜻과 마음이 담겨있는 그가 남긴 글이 주목된다. 글은 그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글에 대해서도 역사를 보는 것처럼 무엇을 어떻게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얻고자 하는 것 또한 커다란 차이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송수경 작 ‘위험한 소설’이 바로 그러한 예증이 아닐까 한다. 이 작품은 조선 중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역모에 연루되어 능지처참을 당했던 허균(許筠, 1569~1618)이 남긴 ‘홍길동전’을 두고 역사적 가정을 풀어내고 있다. 우리에게 기억되는 홍길동전은 적서차별에 대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길동이 집을 나가 도술을 익힌 뒤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규합하여 활빈당을 결성하고 백성들을 괴롭히던 탐관오리들을 처단하며 이후 변조참의에 제수 받고 신하의 예를 다한 후 이상향 ‘율도국’을 세워 왕이 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 ‘위험한 소설’이란 바로 허균의 ‘홍길동전’을 지목하고 있다. 홍길동전에 담겨 있는 사상적 배경이 당시 조선 중기의 사회정치적 배경에 대해 반하는 내용이기에 역모에 해당한다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허균이 쓴 홍길동전과 이를 각색한 홍길동전이 따로 존재하며 당시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누군가 각색한 홍길동전이라는 것을 이 작품의 기본적 틀로 삼고 있다.
이런 전재 하에 교산 허균, 부안의 기생 매창, 매창의 연인이었던 촌은 유희경 그리고 이들 주변인물들인 허균의 벗 후오자 등이다. 광해군 10년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한지 수년이 지난 후 숙부 허보와 외손자 필진은 몰락한 가문의 명예를 되찾고자 허균의 역모죄가 억울한 누명을 쓴 것 때문이라는 증거를 찾아 나선다. 이 작품은 허균이 살아생전 매창과 촌은 유희경과 교류하며 자유인으로 살던 시기와 허보와 필진이 누명을 벗기고자 하는 시기가 공존하며 진행되고 있다.
혁명에 참여하자는 유희경과 그 무리들과는 결코 다른 생각을 지녔던 허균을 바라보는 매창은 안타까운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홍길동전을 지을 것을 권한다. 연인 유희경과는 달리 허균과 나눈 문우지정이 남녀의 감정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허균의 선택은 홍길동이 어떤 인물로 성격 지을 것인지에 그 답이 있음을 알고 홍길동전을 마무리 한다. 하지만 그 홍질동전은 각색된 채 사람들 사이에서 반향을 불러오고 말았다.
사물에 구애되지 않고 마음에 막힌 데 없이 자연 그대로 인간의 본성에 따른 삶을 살고자 했던 자유인 허균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허균의 모습을 무엇을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이라는 시각과 시대와 불화를 겪은 지식인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가 남긴 홍길동전에 담겨 있는 시대의 부조리를 비평하고 100년 앞을 내다본 세상을 꿈꾼 것은 당시로써는 용남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 당시 이런 사상적 배경이 담긴 홍길동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는 것은 정치상황의 복잡성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허균이 살았던 조선 사회는 임진왜란을 겪은 후 급격한 혼란에 휩싸인다. 당시를 살았던 허균으로써 무엇을 보았을까? 그가 품었던 꿈과 열망은 수 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근원의 중심에는 개인적인 삶과 백성과 사회의 앞날을 희망으로 이끌어갈 힘의 원천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