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환자 - 허원주 수필집
김호남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글, 무엇을 담아야 할까?
지방자치제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로 어수선했던 지난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고등학교 국어를 담당하시면서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글을 쓰신다고 했다. 선생님은 자신이 쓰신 글이 실린 문학지를 나눠주시면서 글쓰기에 도전해 보라고 한 것이다. 딱히 글 쓰는 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잊고 살았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제자의 불편한 일로 다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도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 보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뒤돌아 가셨던 분이다. 그때도 여전히 자신의 글이 실린 문학지를 놓고 가셨다.

그 후, 서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소식도 듣지 못하다가 지난 선거에 교육위원으로 출마하신 것을 알고 선거 사무실로 찾아가 뵈었다. 선거사무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선거홍보물이 아니라 두 차례나 내 앞에 내 놓으시면서 내게 글을 써 보라고 권했던 그 문학지였다. “선생님 여전히 글을 쓰고 계시나 봐요?” 하는 제자를 보면서 “넌 아직도 가슴에 담아두기만 하고 있느냐?”며 옛 기억을 더듬으셨다. “잊지 않으셨어요. 이제야 그때 선생님 말씀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 것도 같아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있습니다.” 비록 선거에 당선되지는 못하셨지만 여전히 글을 쓰시며 지역 문인들 사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이제는 가까이서 뵐 수 있다.

억지를 부려서 꾸며내는 글이야 어쩌다 보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숙제를 풀 듯 힘들어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나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이 책 ‘가상 환자’를 쓴 저자 허원주님은 자신 나름의 글을 쓰는 이유를 찾았고 글쓰기와 열애중인 사람으로 보인다. 

수필집 ‘가상 환자’에는 ‘독일 사우나’, ‘변비’, ‘나쁜 남편’, ‘가상 환자’, ‘의사 본색’ 등을 비롯하여 ‘글쓰기의 부끄러움’ 까지 총 스물 네 편의 글이 담겨 있다. 그가 쓰는 글에는 병원 의사로 또 대학 교수로, 아버지, 남편으로 살아가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에 대한 상황묘사가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읽어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아마도 글쓰기와 열애중인 것이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마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허전함이 있다.

“그의 문장에는 절창이 없다. 왜? 그는 경험사실주의적인 사고관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경험 없는 관념의 생성을 철저히 사양한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기가 막힌 명장면은 연이어지지만 심오한 관념적 명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종완의 허원주의 글에 대한 평가다. 글 한 편 써내지 못한 사람이지만 무척 공감이 가는 말이다. 글은 왜 쓰는 것일까? 글이라고 하면 분명 자신이 쓴 것이지만 발표하고 나면 그 글을 읽는 독자의 글이기도 하다. 그 글 속에 담긴 글쓴이의 생각과 독자의 생각이 공감하며 소통되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글에는 독자와 공감하고자 하는 무엇이 필히 담겨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수필집 ‘가상 환자’는 글쓰기의 출발점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오한 관념적 명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독자와 공감하고자 하는 글쓴이의 무엇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말이 칭찬으로만 들리지 않은 이유가 분명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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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호 2011-07-01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보면 특히 수필을 읽다보면 지나치게 현학적인 글들을 접하게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발표하고 나면 독자의 글이 되는 게 책인데....독자가 공감하지 못하는 관념적 문구로 가득찼다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을지....비록 블로그지만 저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