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실의 풍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2월
평점 :
큰 작가 청년 조정래의 만나다
한 사람의 작가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작가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를 직시하며 온몸으로 끌어안고 그 시린 마음을 작품을 통해 대중과 만나는 작가는 한 사람의 자연인을 넘어선 무엇인가가 분명하게 있다. 시대의 획을 긋고 나라와 민족의 앞날에 대한 희망까지를 선사하는 작품 속에 저자의 마음이 올 곧게 담겨 있을 것이다.
우리시대 이러한 작가로 누구나 선 듯 거명할 수 있는 작가로 이미 타계한 이청준, 박완서, 박경리 등을 비롯하여 조정래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등 민족이 처한 현실에 대한 애닮은 속내를 풀어가는 작품으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다. 최근 ‘허수아비 춤’으로 자본주의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나름의 이야기를 펴냈다. ‘우리 시대 진정한 문학의 의미를 찾자면 작가는 인류의 스승이고 그 시대에 산소역할을 해야 한다. 어느 시대나 안고 있는 부조리를 정화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작가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그가 평생 써온 글을 통해 이미 실현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한 작가 조정래의 초기 작품들이 실려 있는 단편 작품집이 발간되었다. 1970년대 초반에 발표된 작품들로 구성된 이 책 ‘상실의 풍경’의 그것이다. 누명, 선생님 기행,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빙판, 어떤 전설, 이런 식(式)이더이다, 청산댁, 거부 반응, 상실의 풍경, 타이거 메이저 등 열편의 단편들이다. 이들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제목을 달고 있지만 한국전쟁을 전후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된 배경이 되고 있다.
‘누명’(1970년)이나 ‘빙판’(1971년) 등은 군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카투사, 미군의 실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며, ‘선생님 기행’(1970년)과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1971년), ‘어떤 전설’(1971년)은 남북분단, 이념문제, 연좌제 등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 사회의 일상 속에 정착된 부조리와 폭력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 권력과 금력 앞에 무너져가는 당시 소시민들의 삶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든 작품들에서 시대와 사회를 향한 뜨거운 애정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발표된 작품을 통해 동시대인들이 대부분 공감하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관한 그의 이야기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지금의 작가 조정래를 있게 한 사상적 배경이 무엇일까? 등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단편집은 바로 작가 조정래의 그러한 작품 배경과 흐름의 출발점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순반란사건, 한국전쟁과 분단을 직, 간접적으로 겪으며 이러한 사건이 우리 민족에게 미친 영향과 이를 극복할 과제를 자신의 작품 속에 실현해가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을 다시 읽으며 비감해진다. 이 작품을 쓸 때, 20년 후에는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두 곱, 40년이 다 되었는데도 통일은 아무 기별이 없다. 이것이 우리 모두 앞에 놓인 피해 갈 수 없는 비극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한 작가의 평생 소망이 ‘민족의 통일’이며 그가 발표한 작들 속에 그러한 소망을 실현할 기원을 담아내고 있다면 그가 살아온 삶은 어쩌면 민족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들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망을 함께 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지닌 작가와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누리는 커다란 행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