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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피는 꽃이 있으랴 - 우리 동네 미륵이 들려주는 39가지 이야기
강영희 지음, 박다위 그림, 남선호 사진 / 아니무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꽃, 미륵의 공통점, 곧 희망이다
시간이 흘러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지금 당장은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 중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나 삶을 살아가는 지혜도 포함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리 서러운 일만은 아니다. 나이가 세상을 바라보고 내게 오는 외풍들을 관조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리라.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본다는 이 관조(觀照)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사람들의 얼굴이 제각각이듯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렇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렸을 것이다. ‘그냥 피는 꽃이 있으랴’의 저자 강영희는 미륵이 들려주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자 했다. 전국을 돌며 세상 속에 그 존재를 애써 드러내지 않고 세월을 누리고 있는 미륵들을 찾아보고 그에 얽힌 사람들의 희망을 찾아 낸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마음을 함축적인 언어로 담아내 이 책을 발간한 것이다. 그것이 시라고 불리면 시가 될 것이지만 굳이 형식이 필요할까
서른아홉 미륵이 있다. 그 미륵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도 살아온 모양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한 결 같이 사람들 가슴 속 희망과 함께한 것을 보았다. 있는 듯 없는 듯 한 자리에 서서 그 오랜 시간을 지내온 것은 미륵만의 힘은 아닐 것이다. 그 미륵에 마음을 쓰며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분명하다. 미륵이 담고 있는 종교적 의미는 그리 중요치 않다. 미륵을 가슴에 담아온 사람들의 소망이 중요한 것이다.
저자는 본 미륵을 보며 ‘어디에 있든 아무런 말이 없지만,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지켜봐주고 등을 두드려 주는 존재다.’고 보았다. 그러한 미륵이 있기에 ‘아무 걱정 말아요.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빛을 내고 있습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꽃’이 피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 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긴 시간 추위와 고통을 이겨내며 생명의 절정의 순간을 꽃으로 피워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냥 피는 꽃은 없다. 꽃이 그렇듯 그런 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속 좁은 사람들은 순간순간 견디기 힘든 일을 대할 때마다 세상 고통이 다 자신에게 잇는 듯 좌절한다. ‘꽃’이 생명의 절정에 이르는 과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듯 우리내 사람들 삶도 그럴 것이다 고 인정한다면 분명 달라질 것이다.
소중한 것은 모두
저절로 하게 되는 거랍니다
(중략)
배워서 하게 되는 것들은
하나같이 힘이 약하답니다
저절로 피어나는 간절한 마음들
저절로 피어나는 간절한 꽃송이들
(중략)
배워서가 아니라
저절로 할 수 있는 일
아주 쉬운 일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일이랍니다
(아주 쉬운 일) 중에서
아프다는 것은 마음이 아픈 것이 가장 큰 것이다. 흔히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며 미리 가져온 아픔의 주인공은 분명 마음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는 일은 그래서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저자는 미륵을 통해 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찾은 그 실마리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주 쉬운 일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일’을 나누는 것이다.
이 책은 세 사람이 만들었다. 미륵을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은 사람 남선호, 그 미륵을 자신의 마음으로 본 모습으로 새롭게 그려낸 박다위, 서울의 모처에서 예술 치료와 마음 읽기를 하는 살롱형 점집을 운영하는 저자 강영희가 그들이다. 각자 독자적인 세상살이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미륵의 가슴에 담긴 사람을 향한 따스한 마음에 공감하고 마음을 모은 결과이리라. 다소 낯선 모습, 현대적 감각으로 태어난 미륵에서 본래 미륵이 가진 친근함이 더욱 살아나고 있다. 글 읽는 재미만큼이나 그림 보는 재미도 좋다. 아쉬운 것은 사진이 홀대받은 느낌이다. 사진도 같이 살아나는 묘수를 찾았다면 더 값진 마음 나눔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 마음이 저절로 가는 그곳, 애써 거부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