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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광나치오 - 한 가지 일에 미쳐 최고가 된 사람들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3월
평점 :
그 길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살아가는 동안 몇 사람이나 알고 지낼 수 있을까?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오지만 정작 잘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은 것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또 내가 알거나 서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기에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실이다 보니 사회 곳곳에 숨어 자신의 분야에서 우뚝 선 업적을 남기고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한 분야에 우뚝 서있지만 제도권 안에 들지 않은 사람들을 ‘방외지사’라 부르며 그들을 찾아내고 살아가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 조용헌이라는 사람의 ‘방외지사 -우리 시대 삶의 고수들’을 통해 우리시대 함께 살아가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숨은 매력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문화부흥기로 평가되는 시기인 18세기에도 오늘날 ‘방외지사’로 불리는 부류의 사람들이 살았으며 그들의 흔적을 문헌을 찾아내 알려주는 것이 이 책 ‘벽광나치오 : 한 가지 일에 미쳐 최고가 된 사람들’이다. 저자 안대회는 이백여 년 전, 남들은 뭐라 하든지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하여 드높은 새 경지를 개척한 중세의 사람들을 찾아낸 그들을 ‘벽광나치오’로 부르며 인물들을 조망하고 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벽광나치오’는 벽(癖, 고질병자), 광(狂, 미치광이), 나(懶, 게으름뱅이), 치(痴, 바보), 오(傲, 오만한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질병을 못 고치고, 어딘가에 미쳐 있으며, 게으르고 바보 같으며 오만한 자들이라는 사람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발굴하고 당시 그들이 대두되었던 사회적 분위기를 비롯하여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조망하며 현대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볼 때 가지는 의의가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백 가지 기술을 한 몸에 지닌 만능 지식인 정철조’, ‘세상의 모든 것은 내 붓끝에서 태어난다 최북’, ‘검무로 18세기를 빛낸 최고의 춤꾼 운심’, ‘세상의 책은 모두 내 것이니라 조신선’, ‘세속의 소란을 잠재운 소리의 신 김성기’, ‘자명종 제작에 삶을 던진 천재 기술자 최천약’, ‘승부의 외나무다리를 건너 반상의 제왕에 오르다 정운창’, ‘천하의 모든 땅을 내발로 밟으리라 정란’, ‘번잡한 세상을 등진 채 꽃나라를 세운 은사 유박’, ‘그래, 나는 종놈이다 외친 천재 문인 이단전’, ‘신분의 경계를 뛰어넘은 희대의 공연예술가 탁문한’ 등 총 열한명의 방외지사들이 등장한다. 모두 18세기 조선의 문화부흥기를 이끌어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하는 일과는 상관없이 공통점이 보인다.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미천한 신분이 주를 이룬 것이나 경제적 궁핍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이 스스로에게 자부심과 투철한 자의식,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열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최북이 자신의 눈을 찌른 일, 김성기가 악기를 던져버린 일같이 권력에 빌붙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는 힘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벽광나치오’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주인공들은 18세기 조선시대를 주름잡았던 양반사대부들이 아니다. 그들은 양반 사대부들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약자들이지만 신분적 한계를 과감하게 돌파하고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로 기술자, 화가, 춤꾼, 책쾌, 음악가, 여행가, 원예가, 문인, 공연예술가들이다. 한 사회를 지탱하는 튼튼한 바침이면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피지배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이 온몸으로 보여준 분야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배계층이 누렸던 문화의 생산자란 사실이다.
이 책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당당했던 삶을 살아간 그들을 발굴하고 새롭게 조망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조선사회가 성리학이라는 학문에 매어 단조로운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이런 사람들의 역동적인 활동에 의해 찬란한 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음을 알게 된다.
사람들의 사람에게 흥미를 갖는 것은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들의 무엇이 현실의 요구를 벗어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적 관심사나 자신의 안일을 돌보기보다는 내면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고난의 길임을 알면서도 ‘무리와는 다른 짓 하는 놈’들의 삶이 흥미로운 점은 그 고난을 극복한 용기와 열정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