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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군대 ㅣ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13
유광수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가정(假定)’으로 현실을 돌아 보다
역사에 가정(假定)이 존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지난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가정’이라는 설정을 통해서라도 아쉬움이 남는 일에 대해 생각 속에서나마 이뤄보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가정으로 고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조선 왕 정조가 몇 년이라도 더 살았더라면? 혹은 갑신정변이 성공했더라면? 등등 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다만,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가정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는 있기에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가정’이라도 해 보는 것이리라.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담아내는 것으로 문학이라는 장르가 있고 텔레비전 드라마가 크게 한 몫을 담당하기도 한다. 특히, ‘팩션’이라는 부분이 등장하면서 작가들의 상상력과 독자들의 기대감이 소통과 공감을 이뤄가며 대단한 흥미꺼리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왕의 군대’ 역시 그런 장르의 소설이다. 역사적 주 무대는 임오군란(壬午軍亂, 1882)과 갑신정변(甲申政變, 1884. 12. 4)이 일어난 19세기 조선이다. ‘3일천하’로 막을 내린 갑신정변의 그 3일간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으며 그들은 무엇을 꿈꿨는지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갑신정변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나라와 일본이 대립하게 된 상황에 청나라를 배경으로 왕실과 왕비 민씨, 민영익, 김홍집 등을 중심으로 한 사대당과 일본을 배경으로 한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이 중심인 개화당(개화파) 사이에 대립이 격화되었다. 1884년 12월 4일 홍영식이 총관으로 있는 우정국 개국 축하 만찬회를 이용하여 정변을 일으켰다. 이들 개화파들은 연회가 열리는 도중 이웃집에 불을 질러 혼란을 일으킨 다음 서재필을 비롯한 일본 군관학교 출신 사관생도들이 초청한 사대당 요인들을 모조리 암살하려 했으나, 겨우 민영익에게 중상을 입혔다. 다음날 12월 5일에 창덕궁으로 돌아와서 독립당은 각국 공사 및 영사에게 신정부의 수립을 통고하고 관리를 임명하였으며 6일에는 14개조 혁신정강을 공표하였다. 그러나 왕비 민씨 측에서 청나라에게 개입을 요청, 청나라와 조선 연합군이 갑신정변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여 창덕궁을 공격하였으며, 6일 오후에는 창덕궁과 창경궁 후원 일대에서 호위 중인 일본 병사와 싸웠다. 청나라 군대에 의해 정변이 실패로 끝나게 된다. 김옥균·박영효 등 갑신정변 주역들은 후퇴하는 일본 병사를 따라 일본 공사관으로 피신해 있다가 인천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로써 집권은 삼일천하로 끝났다.
이는 역사가 기록하는 감신정변의 내용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것은 작가가 설정한 정조(1752~1800)의 유훈이라는 것이다. 정조의 유훈은 토생금 암유병 민즉천(土生金 巖有兵 民則天)이라는 것으로 돈과 병사가 중심이 된다. 이런 정조의 유훈을 바탕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개혁할 근간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갑신정변을 주도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꾼 김옥균, 정체를 알 수 없는 연쇄살인범 흑표, 왕에 대한 충절과 약자에 대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종사관 송치현 등이 고종을 중심으로 저마다의 대의를 품고 암울한 시대의 분위기를 헤쳐 간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사명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외세의 압력이 강화되어가고 조선에서 청나라와 일본의 야욕이 점차 강화되는 정세에서 나라를 세워갈 힘을 읽어버린 조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것이다. 더 이상 왕을 중심으로 한 나라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김옥균의 선택이나 ‘민즉천’이라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한 흑표, 왕의 나라에서 왕의 신하로 살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늘 고민하는 송치헌, 그들의 마음속에 있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지키고 세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그려내고 있다.
갑신정변이라는 미완의 사건에 대한 흥미로움, 미스터리적인 이야기 전개, 3일 동안의 긴박감, 왕의 군대에 대한 미묘한 기대감 등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구성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왕의 군대’는 외세의 강압에 의해 나라를 지켜갈 무력을 나타낸다. 하지만 조선에는 왕과 백성을 지켜낼 힘이 없었다. 그리하여 청나라나 일본의 무력에 의지하게 되고 결국 그 무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선왕이 준비해 둔 군대가 있다면 무너지는 조선도 마지막 힘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