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홍신 세계문학 5
허먼 멜빌 지음, 정광섭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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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 무엇을 봐야 할까? 
이러저러한 책을 접하다보면 책장 넘기기가 버거운 책들이 있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 인문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서적도 아닌 문학작품에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요사이 들어서 의외로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 받고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 내게 그런 경험을 겪게끔 한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만난 H. 멜빌의 작품 백경도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었지만 막상 만난 백경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백경’의 기본 줄거리는 간단하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청년 이스마일이 상선을 타고 항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포경선에 오른다. 이스마일이 포경선을 타고 대양을 누비며 직접 보고 느낀 다양한 해상 생활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스마일이 전해주는 이야기의 중심에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허브가 있다. 선장은 40여 년이 넘는 포경선의 경험에서 잊지 못할 고래를 만나고 그 고래에게 한쪽 발을 잃었다. 그 복수를 위해 포경선 피쿼드호에 올라 고래 백경을 찾아 나선다.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을 지나 일본 열도 근해에서 천신만고 끝에 백경과 만나고 그 고래에 의해 선장 에이허브를 포함 포경선 피쿼드호를 침몰하고 최후를 맞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스마일은 할 말이 많아 보인다. 우선 고래의 종류를 비롯하여 고래에 관해 생물학적인 전문적인 내용을 포함 역사적으로 등장하는 고래에 관한 모든 내용을 전해주고 있다. 심지어 사전이나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고래이야기까지 내용이 넘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포경선, 선원들의 직능에 따른 차이와 함께 탐승한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들이 다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어 이 백경이라는 ‘소설’이 해양모험 소설인지 아니면 무슨 백과사전인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웬만한 인내력이 아니면 당하기에는 버거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다소 박진감 넘치는 모험적 내용이 그려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소설 ’백경’에 대한 묘사가 많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대모험’,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욕망과 좌절’, ‘장엄하고도 슬픈 아름다운 대서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백경을 읽어가며 아니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꼭 이런 묘사가 나와 공감하는 바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지루할 만치 다양한 사물과 사건에 대한 묘사는 줄거리를 따라가기조차 버겁게 만들며 묘사하는 그것조차도 올바로 이해하기 힘든 무엇이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모험정신?, 선과 악의 대결?, 거대한 자연 앞에 무기력하기만 한 인간? 다시 생각해봐도 성격 규정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버거움에 홍신문화사 발행 이 백경은 한 페이지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아내고 있어 편집상 답답함을 더하고 있다. 글자 역시 두껍고 행간도 좁아 마치 이스마일이 세상 모든 것을 이 한편의 소설에 담아내고 싶은 마음처럼 느껴져 안타까움마저 든다.

그렇더라도 이스마일이 전해주는 모든 이야기가 다 지루한 것은 아니다. 몇 년이나 육지와 떨어져 생활하는 선원들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자연을 묘사하는 문장, 고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분명 관심을 끌만한 것이며 마지막 결말을 이끌어가는 박진감은 좋다. 하지만, 선장 에이허브의 백경에 대한 집착은 무엇으로 봐야 하는지 생각할 여지가 다분히 많은 부분일 것이다. 한 개인의 복수를 위해 다양한 이유로 포경선에 오른 선원 모두의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문학작품을 접하며 언제나 간과하지 말아야할 부분이 작가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상황이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저자 H. 멜빌 살았던 19세기 미국의 상황과 이 이야기의 맥락을 연결하여 미국의 개척정신을 말하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공감해야 하는지 여전히 난감한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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