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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여기에 ㅣ 홍신 세계문학 4
미우라 아야코 지음, 정성국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구름 위에는 언제나 태양이 있다
한 인간에게 종교가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굳이 중세 기독교의 시대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종교라는 이름아래 보여주는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는 무엇이 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목숨일 것이지만 그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도 내 놓을 수 있는 것이 종교가 아닌가 싶다. 순교라고 이름 붙이지 않을지라도 종교 안에서의 삶이 어떨지 그저 짐작만할 뿐이지만 사람에 따라 대단히 큰 작용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길은 여기에’라는 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종교가 가지는 긍정적인 의미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빙점’의 작가로 잘 알려진 저자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1922년 4월 25일-1999년 10월 12일)다. 저자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리 길지 않은 삶 속에서 무려 13년간 긴 투병생활을 했다. 그것도 누워서 천장만 바라봐야 하는 중환자로 말이다. 그가 종교생활 속에서 만난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내놓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1946년 빙점 이후 1999년 사망할 때까지 다양한 창작활동을 벌렸다. 주요작품으로 ‘길은 여기에’. ‘이 질그릇에도’, ‘살며시 생각하며’ 등 다수가 있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기 전까지 순조로운 삶을 살아가며 교사로 활동하게 된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주어진 교사로써의 임무를 성실하게 해가던 어느 날 패전 소식을 접하고 미국이 진주한 이후 달라진 학교생활 속에서 교사의 책임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7년간의 교사생활을 마감한다. 패전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에 의해 결혼이라는 현실안주를 택하고 약혼하는 날 발병으로 그마저 포기하고 만다. 이후 병을 치료하는 과정은 삶을 포기할 만큼 좌절과 절망 등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자신이 믿었던 세계가 무너지는 혼란 속에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약한 존재인지를 실감하며 회의주의에 빠져 그녀는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저자에게 전혀 새로운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마에카와 다다시라는 사람으로 어린 시절 친구이자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크리스찬이었다. 그는 자신을 포기한 삶을 벗어나 진지하게 살라며 충고하며 삶에서 희망을 발견하기까지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이며 삶의 의미였던 그마저 병으로 인한 죽게 되지만 그 절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가 보여주었던 사랑의 힘이었고 이후 삶을 포기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후 죽은 마에카와 다다시와 너무도 닮은 미우라 미쓰요를 만나 건강을 회복하고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담겨있다.
‘길은 여기에’를 읽으며 종교 안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이야기보다는 투병의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 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 그리고 저자 미우라 아야코의 사랑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보게 된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본 이 자전적 이야기는 우선 교사생활을 끝내고 발병하기까지의 과정과 발병하고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가꿔가는 모습과 그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에 이르는 과정 이렇게 구분하고 보게 되었다.
‘나는 관능적이면서도 정신적인 깊은 사랑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 만일 깊은 사랑이라면 육체적인 사랑은 없어도 좋다. 그러나 육체만의 사랑은 싫다. 이것은 내 관능이 아직껏 깨지 않고 잠들어 있기 때문일까. 어쨌든 나는 지知 정情 의意의 깊고 풍요로운 것을 구한다.’
저자가 인간의 본성인 사랑을 구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다. 그렇기에 두 남자를 사랑하는 과정이 자신의 기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담담하게 그려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병중에서도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과 세상의 올바름에 대한 추구는 종교로부터 얻은 힘이 크다고도 보이지만 한 인간이 가지는 의지나 정신적인 힘의 깊이로 보고 싶다. 13년간 길고도 긴 투병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찾고자 했던 사랑에 대한 믿음 때문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