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세계문학의 숲 7
마크 트웨인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평점 :
일시품절


시간을 넘어서는 뛰어난 상상력의 결과
때론 이미 알고 있는 작가와 작품을 서로 연결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서는 너무 유명한 작가와 작품일수록 그러한 경향성이 있는 듯싶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독특한 세계가 분명하게 있는 것이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알게 된다. 언젠가 국내 작가의 한 소설을 읽고 흥미로운 점을 느꼈는데 그의 소설이 아닌 다른 글에서 같은 점을 보고 분명 낯설지 않음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그 작가만의 면모가 확연히 들어나는 그런 작가가 좋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들 하나 보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등으로 이미 익숙한 마크 트웨인(1835 ~ 1910)이지만 이 소설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와 연결 짓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을 읽어가다 다시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살펴보고서야 그 사람이 그 사람임을 알게 되다니. 마크 트웨인이라는 작가가 차지하는 미국 내 지위는 논하지 않더라도 나에게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만으로도 충분한 작가였다.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는 시간을 건너뛰어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19세기의 미국과 6세기 영국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이동이다. 그것도 1000년을 훌쩍 넘어선 무한의 상상의 세계를 넘는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가던 19세기 미국에 살아가는 코네티컷 출신의 양키 행크 모건이 6세기 아서왕의 시대인 영국으로 시간여행을 한다. 기사를 만나 그의 포로 신세로 상상을 초월하는 시공간의 이동이다. 양자가 융합될 수 없는 다른 존재이기에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19세기의 다양한 과학 기술과 지식을 동원하여 등의 그의 기지를 이용하여 왕과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막강한 자리에 오른다.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넘어선 무엇을 체험하거나 역으로 생각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6세기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 마치 허구의 세상 같다. 기사도 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허풍만 떠는 마법사 멀린 그리고 그들에 이용당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이용하여 자신도 철저하게 이 혼란스러운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 알고 있는 자연현상을 이용하여 쉽게 당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은 너무도 쉽다.

드디어 행크 모건은 그러한 시대를 바꾸고자 한다. 인권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희망을 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허청 설립, 학교제도를 만들고, 신문을 발행하는 등으로 표현되는 19세기 자신이 살던 시대의 산물을 이용하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는 모험을 넘어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마크 트웨인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미국의 동부지역 문학은 고상하고 고전적인 것을 중시하는 유럽문학의 아류가 주를 이룬 지역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류의 분위기를 넘어선 작가의 작품 경향성은 미국 문학을 변화시키는 대단한 역할을 한 것이라는 평가다. 유머와 해학으로 대표되는 저자의 문학은 바로 유럽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추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강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는 것이리라.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의 경향성이 변한다는 것은 바로 그 작가의 삶에 변화가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등 초기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점과 후기 작품에서의 차이는 미국인으로써 저자의 삶이 구체화된 배경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000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여행을 통해 유럽문학의 근본적 출발점으로 돌아가 19세기를 살아가는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시공간을 초월하여 벗어나고 싶은 영국과 미국의 비슷한 무엇을 본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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