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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 ㅣ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9
김준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누구나 관심 있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점에 있어서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것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한다. 말에 걸리지 않고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쉽사리 흘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성(性)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때론 웃자고 시작한 이야기에서 울게 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바로 과유불급이 문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性)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무관하지 않을 이 성 이야기는 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하며 각색되고 변색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리라. 하지만 이러한 성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 시기는 따로 있는 듯하다. 생활이 각박하거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책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도 그런 의미에서 불안정했던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 책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이야기책’, ‘소낭’, ‘진담론’, ‘파수추’, ‘어스신화’, ‘성수패설’, ‘기문’, ‘교수잡사’, ‘각수록’, ‘파적록’, ‘거면록’ 등 여러 종류의 책들이 만들어진 시기 역시 신분상의 문제나 사회적 제약에 의해 뜻한 바를 이뤄가기 힘들었던 시기에 작성된 것들이 대분이라고 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기록물들에서 성 이야기만을 선별하여 해석하고 편찬한 책이다.
은밀하고 때론 도발적인 이러한 이야기들이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공유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하지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통되었다는 점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노골적으로 대놓고 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러한 성과 관련된 이야기로 풍자하여 양반이나 권력에 대한 대항의 의미도 있었다는 점이 눈여겨 볼만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성로비 등에서 보이듯 돈, 권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권세를 부리는 양반들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통용되었던 기생이나 첩들과 사이의 이야기다. 또한 그 범위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버젓이 행세께나 했던 양반가의 부부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색하고 당혹스러운 이런 이야기들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관련된 것이 바로 성 이야기이기에 저변에 확산되고 소통되는 근간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열 한권이나 되는 여러 책에서 발간 시대 순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책들에서 모았기에 비슷한 이야기가 중복되기도 한다. 이해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무슨 뜻을 담았는지 모두지 알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짧은 글들이 대부분이기에 읽어가는 대에는 무리가 없다. 번역자는 이들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이 사회적으로 억눌린 감정을 발산했을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일면 타당성이 있는 지적으로 보인다.
누구도 대놓고 이야기 하지만 못하더라도 은근히 관심 갖는 것이 성 이야기다. 이것은 시대나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타고난 인간의 본성이기에 그럴 것이지만 이러한 이야기 속에 사회적 한계나 본능에 대한 욕심을 해학을 통해 그 속에 진정으로 담고 싶었던 뜻을 알아가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