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재기이 - 타고난 이야기꾼, 추재 조수삼이 들려주는 조선 후기 마이너리티들의 인생 이야기
조수삼 지음, 안대회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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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는 사람들 속에서 되살아난 조선시대
역사 속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 시대를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사회적 한계로 인해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이 있었기에 역사는 이어지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혜택이 있을 것인데도 말이다. 그렇기에 기록문화의 중요성과 의의가 새롭게 생각된다.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기에...

조선시대의 철저한 신분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사회가 유지되고 사람들의 삶이 윤택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신은 하지 말아야한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 까지를 거부했던 시대가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의 단면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회의 주류로 자처했던 양반들 말고는 기록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 중에서도 몇 몇 사람들의 기록에 의해 살아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살아나는 그들은 대부분 하층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며 양반들이 스스로에게 하용하지 못했지만 사회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힘을 주었던 일에 종사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어느 사회나 예외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이러한 사람들을 기록한 사람이 있다. 당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불렸던 조수삼이 그 사람이며 그의 들려주는 조선시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추재기이’가 그것이다.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은 조선 후기(영조, 정조, 순종, 헌종)때 사람이다. 정조와 순조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1500여 수의 시를 창작한 시인이다.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에서 중추적으로 활동했으며, 여항 시단을 비롯하여 당시의 쟁쟁한 사대부들과도 시를 통해 교유했다. 중인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벼슬을 하지 못하다가 여든셋이 되어서야 노인에 대한 예우로 진사시에 급제, 벼슬을 받았다고 한다. 청나라 사신을 보좌하며 여러 번 청나라를 오가며 청나라 문인들과 교류했으며 이 책 ‘추재기이’는 그의 말년에 손자에게 구술하여 남긴 저작이다. 남겨진 책으로는 ‘연상소해’, ‘추재시초’, ‘추재집’ 등이 있다.

‘추재기이’는 조선 영조와 정조 때 활동했던 당시 조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도둑, 강도, 조방꾼, 거지, 부랑아, 방랑 시인, 차력사, 골동품 수집가, 술장수, 임노동자, 떡장수, 비구니 등 모두 71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주류에서 밀려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저자 조수삼이 이들을 골라 이야기를 엮은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보인다. 바로 사회에서 소외 받았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때론 추앙 받았던 사람들이라는 점과 이들 모두가 다른 사람들에게 따스한 인정을 폈다는 점일 것이다. 신분상의 한계로 남들의 선망을 받진 못하더라도 당당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따듯한 인간미에 중심을 두고 바라봤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수삼이 자서에서 ‘인물의 옳고 그름이나 나라의 정사에 관련된 일은 한 가지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힌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자신이 처했던 중인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제약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 조선이 철저한 신분사회로 주류인 양반 사대부들이 장악한 사회의 병폐나 모순에 대한 저자만의 반항적인 표출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 책을 번역 발간한 안대회는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또한 영조 정조 때의 조선시대 민간인들 사이에 흘렸던 생활모습 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사회 밑바닥 층들의 삶에서 그들이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겼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소중한 자료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이 조선에서 사라질 뻔 했던 사람들이 대한 기록이라는 의의를 가진다면 이는 옛 조선시대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분명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달라진 오늘날에도 사회 곳곳에서 몸을 낮추며 묵묵히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 역시 이름 없이 살아질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조수삼의 ‘추재기이’에 담긴 사람들이 조선을 지탱했듯이 오늘의 그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든든하게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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