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자신을 가둔 상자는 자신이다
‘나’를 ‘나’로 규정할 수 있는 기본적 근거는 무엇으로부터 찾아야 할까? 사회적 관계를 떠나 ‘나’라는 존재를 규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곧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는 말로 ‘나’는 ‘타자’가 있을 때 비로소 규정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존재는 수많은 관계를 형성하는 그 속에서 비로소 하나, 둘씩 밝혀갈 수 있다는 말과 다름 아닐 것이다. 

이렇듯 사회적 관계는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며 자신을 규정하기에 때론 그 사회적 관계를 벗어난 자연인으로서의 자신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때론 이런 사회적 관계를 벗어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 순전히 구경꾼 입장에서 세상과 사람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 말이다. 이런 마음은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강압적이면서 막중한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나타내는 인간형을 만들어낸 작가가 일본 현대 소설가로 ‘타인의 얼굴’, ‘모래의 여자’로 유명한 ‘아배 고보’다. 그는 ‘상자인간’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인간의 한 유형을 만들어 냈다. 

‘상자인간’은 버려진 골판지 상자를 거주공간으로 꾸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이 주거공간이 상자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상자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 세상을 관조하는 상자 속 창문으로 그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본다. 상자인간이 존재하는 곳은 사회의 그늘지고 구석진 자리로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않은 공간이다. 머리부터 허리까지 내려온 종이상자로 자신을 숨긴 채 세상을 표류하는 인간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사회적인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어디에도 등록하거나 소속되지 않는 것이다. 그 상자인간과 같은 상자인간들이 도시 속에 다수 존재 한다.

그 상자인간은 어느 날 공기총을 맞고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간다. 찾아간 병원에서 간호사로부터 종이상자를 팔라는 제안을 받지만 상자를 탐내는 사람은 간호사가 아니라 그 병원의의사임이 밝혀진다. 그 의사 또한 상자에 자신을 가두고 사는 상자인간이면 상자인간의 모습을 재현한 ‘가짜 상자인간’이다. 상자인간과 가짜 상자인간, 그리고 간호사를 둘러싼 이야기를 사이사이에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하며 소설의 줄거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하다 끝을 맺는다.

‘상자인간’은 그의 소설 ‘타인의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타인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감춘 가면을 쓰고 세상과 부인으로부터 도망한 한 남자의 이야기처럼 이 ‘상자인간’ 역시 상자라는 도구를 아용하여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그 세상과 사람들을 ‘엿보기’를 관조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줄거리를 따라가기가 혼란스럽고 때론 벅차기까지 한다. 작가 아베 고보는 이처럼 ‘가면’이나 ‘상자’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숨지만 그 세상을 결코 떠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밝히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가지는 속성 중 ‘훔쳐보고 싶은’ 욕망을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어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속할 수밖에 없는 사회관계가 주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마음이 극대화 된 형태를 상자인간이라는 한 인간형을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존재를 거부하고 고립을 자초하지만 여전히 사회의 한 구석에서 서성이며 스스로 만들어낸 조그마한 창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이는 현대인들이 자신만의 벽을 쌓고 그 벽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고독과 외로움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현대인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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