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으로 눈으로 현대인의 가슴을 드려다 본다

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김훈으로 눈으로 현대인의 가슴을 드려다 본다
한국문학의 거장 조정래 작가는 ‘황홀한 글감옥’에서 자신의 책 ‘태백산맥’ 200쇄 출간 기념식에 한 작가만 초대했다고 밝혔다. 그의 초대를 받은 작가가 다름 아닌 김훈이다. 조정래 작가의 심중에 무엇이 있는지는 그만이 알겠지만 조정래와 김훈 작가를 좋아하는 한 독자로써 나만의 시각으로 해석을 해본다. 무수히 많은 한국작가들 중에 조정래의 위치는 너무도 우뚝 서 있다. 그렇기에 그 뒤를 이어갈 후배 작가들의 부담은 매우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극히 개인적 관심사에서 출발하지만 바로 그 뒤에 김훈이 위치해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공연하게 밥벌이의 일환으로 글을 쓰고 있다고 밝히는 김훈의 심중에 글이 정말 밥에만 있을까? 김훈의 단편집 ‘강산무진’을 통해 김훈 그만의 이야기와 글맛에 흠뻑 빠지는 시간이다. ‘강산무진’은 신문기자에서 소설가로 전환하고 소설가로 자신을 자리를 확고하게 잡은 후 발표된 단편집이기에 더 관심이 간 글이다. 그런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 쏟아낸 것이 아닐까? 라는 기대감으로 보았고 그 기대는 충분히 충족되었다.

김훈의 소설집 ‘강산무진’에는 배웅, 화장, 항로표지, 뼈, 고향의 그림자, 언니의 폐경, 머나먼 속세, 강산무진 이렇게 총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어느 하나 쉽게 읽히는 것이 없다. ‘건조하다’, ‘단조롭다’, ‘메말랐다’, ‘단문장이다’, ‘외롭다’ 등 이러한 단어가 김훈의 글을 읽는 독자들의 느낌의 공통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소설들에서도 여전히 그 느낌은 강하게 다가온다. 인간의 사회적 속성을 비켜간 사람들의 삶이 처절하게 그려지고 있는 이 소설들은 어쩜 우리 삶의 현주소를 밝혀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택시기사, 아내의 죽음, 등대지기, 대학교수, 형사, 언니, 스님, 간암환자 등 이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적 관계나 틀 속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들 모두는 지난 시간이나 현실의 삶에 매어있지 않다. 그들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닥친 어려움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거나 좌절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가가 그 한 복판에 서 있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지기에 앞서 밝힌 김훈의 글을 대하는 그 느낌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가 없다. 특히, ‘언니의 폐경’에 묘사되는 폐경을 맞는 중년 여성의 심리는 독자를 그때의 여성으로 만들어 가고 간암 선고를 받은 중년의 남자가 자신의 일상을 정리하는 모습은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하는 낯설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김훈, 그의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늘 상 반가움이 있지만 다정함을 느끼기 보다는 몇 발짝 옆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옮기고 있는 낯선 아저씨를 보는 듯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동안 그의 소설들이 주로 시간을 거슬러 역사적 현장에 서 있었는데 이제는 문득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오늘로 날아온 사람이 느끼는 그 감정은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맴돌고 있다. 소설가 김훈의 가슴에 담긴 현대인들의 모습이 이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