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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준다면
게일 포먼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삶과 죽음,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책을 읽다보면 감정 상태를 한없이 가라앉게 만들어 먹먹해진 가슴으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자자가 전하고자 하는 감정상태가 그대로 전이되어 저자와 독자가 하나 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자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고 내용 전개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지면서 예상되는 결론으로 도달하면 ‘그럼 그렇지’에서 멈추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끔은 책을 손에서 놓은 후로도 한동안 책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 ‘네가 있어준다면’이 바로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든다. 책장을 덮고도 한참을 창밖 먼 산을 바라보며 가슴을 진정시키게 만드는 책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어떤 일을 당장 처리하지 아니하고 나중으로 미루어 둔 상태를 말하는 ‘유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동안 자신과 주변을 면밀하게 관찰하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순간까지를 담담하게 그려가고 있다.
열일곱 소녀, 첼로를 연주하는 소녀다.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부모와 사랑스럽기만 한 남동생, 자신의 분신 같은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의 일상에 가족과 함께 행복한 나들이를 시작한다. 아빠, 엄마, 동생 그리고 자신은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순서대로 들으며 행복함에 빠져 있던 순간 트럭과 충돌하며 모든 것이 변해버린다. 부모는 현장에서 죽고 자신을 누워있는 자기보습을 보고 동생은 보이지도 않는다. 무슨 상황인지 갈피를 잡을 사이도 없이 구급차로 병원으로 옮겨오고 바쁜 수술과 이후 중환자실에 누어있는 자신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교통사고의 현장에서부터 병원까지 육체를 이탈한 영혼이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네가 떠나고 싶다 해도, 이해한다고 그냥 말하고 싶었다. 네가 꼭 우릴 떠나야 한다면, 괜찮아. 이제 그만 싸우고 싶다 해도 괜찮아.’
애지중지 하던 손녀가 의식불명 상태에 있지만 아빠와 엄마 그리고 동생 곁으로 갈지 아니면 남을지에 대한 선택의 혼란스러움에 있을지도 모른 손녀를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소녀의 영혼은 사랑하는 애인의 들려주는 첼로 음악을 들으며 육체를 떠나 맴돌던 영혼은 한 몸이 된다. 소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 자신의 온힘을 다 모아 애인의 손에 잡힌 자신의 손에 힘을 모으는 것으로는 선택의 방향을 알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온 가족이 나들이를 시작한 시간으로부터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과정을 시간대별로 그려가고 있다. 그 모든 과정을 소녀의 영혼은 지켜보며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과 행복한 가족, 학교생활, 친구, 애인, 첼로 등 소녀의 모든 것이었던 것들과의 지나간 시간을 되살려내고 있다. 교통사고 이후 가족과 친지, 친구들과 자신의 모습을 관찰자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모양으로 그려지고 있기에 직접적인 감정이입이나 과도한 감정 노출은 극도로 자제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바로 이 점, 선택이 유보된 상태에서 관찰자의 모습으로 그려가는 것이 이 소설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그렇기에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이입보다는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난 이후 깊은 수렁으로 빠지듯 암담함이 지속된다.
자동차는 현대인들의 필수품이다. 그 필수품으로 인해 소설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난다. 교통사고로 온가족이 일시에 죽거나 그중 일부만 살아남아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사회다. 먼저 간 사람을 따라가야 하는지 남은 사람들 편으로 돌아와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올바른지는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맴돌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