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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한 어른을 보내고 남은 자들의 사명
혼란스러운 시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은 ‘어른’이다. ‘어른’은 어둠을 밝히는 안내자이며 힘이 부칠 때 비빌 언덕이며 때론 넉넉한 가슴으로 안아주는 따사로움이다. 그래서 어른의 한마디는 제때 그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며 이를 따르는 아랫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이 된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제 목소리만 높일 때 시비를 가리는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이 바로 ‘어른’인 것이다.
내게도 마음속으로 ‘어른’으로 모시고 있었던 분이 있다. 세상을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하던 대학생활 초기에 대단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사람이다. 그 시절 세상을 향한 꿈을 피워가기 위해 거칠 것 없었던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안내자를 톡톡히 한 사람이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이라는 두 권의 복사본 책을 통해 만나게 된 사람이 바로 리영희다. 그를 통해 내가 살아가야 할 이 땅의 현실을 알게 되고 자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고 본다. 이른바 존경하는 사람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는 없으나 사람의 도(道)나 학문을 본으로 삼고 배우는 것을 이르는 사숙(私淑)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0년 12월 5일 그 어른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 시대 지성인과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마지막 소식에 절망에 가까운 탄식을 토해냈다. ‘사상의 은사’, ‘의식화의 원흉’이라는 극과 극을 달리는 평가는 그가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다고도 보인다. 우상에 근접한 사람이었든 이성에 근접한 사람이었든 그의 존재는 범접하지 못할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 책 ‘리영희 평전’은 그 어른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접하던 시기에 출간되어 그를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이 책 ‘리영희 평전’은 한 개인에 대한 평가를 우선한다고 하지만 우리 민족이 겪어 왔던 혼란스러운 우리나라 근현대가가 망라되어 있다. 일제침략시대, 6.25전쟁과 미군정, 그리고 이어지는 독재치하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는 리영희의 일생이 바로 우리민족이 겪어왔던 굴곡과 직결된다는 점의 반증일 것이다.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굵직한 사건마다 그가 빠지는 일은 없었다. 태어나 자란 고장의 시대적 환경, 남쪽으로 내려와 보낸 일제침략 시대의 학교생활, 가난 때문에 선택했던 대학과 군 통역장교 시절 그리고 이어지는 언론사 기자 생활은 그로 하여금 우리 민족의 운명에 진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시대 순으로 살피고 있는 이 책은 언론인이과 대학교수로 활동하던 시기에 집중된 그에 대한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점철된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심에 그가 발표한 각종 기사나 사회평론이 있었다. 외신기자 출신으로 누구보다 국제문제의 흐름에 민감했던 그는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을 세계정세의 흐름에서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 한몫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글로써 뿐 아니라 현장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이러한 그의 삶이 있었기에 같은 길을 가는 언론인, 교수, 지식인들에게 당당하면서도 거침없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수차례에 걸친 투옥으로 인한 병마도 그의 민족에 대한 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정권이 바뀌는 동안 희망도 가졌고 그 가졌던 희망만큼 실망도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어른’으로써의 책무를 마다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병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당면한 우리사회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고 애정 어린 고견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다름 아닐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미국의 노예정권이야. 그것도 사상 최악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그의 비판은 그가 떠난 이 시점에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선다.
‘리영희를 사상의 은사, 생각의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훌륭한 정보나 견해를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스승이란 우리에게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우리를 각성케 하는 모든 존재에게 부여할 수 있는 이름이다.’
이 말은 리영희 어른의 진정한 가치를 말해주고 있다. 시대를 밝히던 ‘어른’이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그 어른이 몸으로 보여준 지식인의 사명은 여전히 그대로 유효하다. 어른의 지위는 단지 나이로 말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가고 남은 자리에 우리 민족의 운명을 밝혀줄 또 다른 어른이 존재해야 한다. 이 시대 누가 그가 비워주고 간 어른의 지위에 오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