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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미학 산책 - 한시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탐구한 우리 시대의 명저, 완결개정판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0월
평점 :
옛것과 공감하는 현대인의 정서는 둘이 아니다
곁에 두고 오랫동안 읽게 되는 책이 있다. 우선 관심 가는 내용을 담은 책이기도 하지만 깊게 읽어가며 행간에 숨겨진 뜻을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이고 또한 저자의 글이 주는 글맛에 매료되어 그 맛을 천천히 느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이렇게 곁에 머물고 있는 책들은 사람의 마음을 담은 글들이 주를 이룬다.
모든 글이 사람의 마음을 담았을 것이지만 유독 그 마음을 ‘가득 담았으되 넘치지 않은’ 절제미를 보여주는 것이 시(詩)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글자에 숨겨진 뜻을 이리저리 오묘하게 섞고 재조합하여 깊은 맛을 담고 있는 것이 옛 선조들이 마음의 정(情)을 담았던 시가 그것이다. 하지만 한시는 현대에 들어 한자에 대한 어려움에 따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며 점점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옛 사람들의 글을 담아놓은 책에서나 겨우 맛볼 정도가 된 것이다.
이러한 한시를 현대인 곁으로 바짝 다가오게 한 학자가 있다. 정민(鄭珉)이라는 익숙한 문학가다. 그는 한시의 매력에 빠져, 한시가 우리 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하고 한시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고전도 코드만 바꾸면 힘 있는 말씀으로 바뀌는 힘이 있다며 먼지 쌓인 한적 속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주요 저작으로 ‘한시 미학 산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등이 있다.
‘한시 미학 산책’은 한시의 창작에서부터 시가 담겨있는 의미와 뜻 그리고 한시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살핀 한시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아놓은 책이다. 한시가 갖는 아름다움과 그 글이 담고 있는 정취에서 현대인이 놓치고 살아가는 마음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은 1996년 초판이 발행되어 꾸준히 사랑받아 왔으며 발행된 지 15년 만에 완결개정판으로 재 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물네 가지의 주제로 한시에 대해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자칫 한자가 주는 어려움이나 두려움으로 대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쉽게 해설한 저자의 섬세한 마음이 돋보인다. 우리문화 전반에 걸쳐 한자문화권에서 같은 글을 사용한 중국의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한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한시의 원류는 중국의 송나라 당나라의 시를 원형으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의 한시와 한국 한시를 주제, 형식, 작법에 구분하고 한시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시인으로 당연히 중국의 유명한 두보와 이백을 물론이고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정지상, 이규보, 조선의 이덕무, 이옥, 현대의 박목월과 조지훈 등 시대의 흐름을 관통했던 시인의 작품들을 비교 분석하는 맛이 제법이다. 또한 근엄하기만 할 것 같은 이런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해학적 요소나 파시를 통해 보여주는 문자 유희 등은 살며시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묘미가 있다.
사물을 바라볼 때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시 역시 그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시인이 담고 있는 시어에 숨겨진 의미를 올바로 파악하고 진정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은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저자의 ‘한시 미학 산책’을 따라가다 보면 그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어렵게만 느껴지는 한시를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고귀한 뜻을 담은 글이라도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 책을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는 한시의 맛을 재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한 편 한 편의 시를 감상하는 즐거움에 시에 담긴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그림 또한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스함이 전해지는 책이다.
‘질문의 방식을 바꾸고, 접근의 경로를 고쳐서, 신발 끈을 새로 매야한다.’ 저자가 옛글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표현한 말이다. 문헌 속에 잠자고 있는 옛글을 오늘의 시점으로 살려내는 일이 만만치 않지만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옛글 속에 담긴 사람의 정신을 살려 오늘을 살아가는 근본으로 삼고자 한다는 뜻을 담고 있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고 본다.
곁에 두고 오랫동안 보고 싶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그 책을 발간한 저자에게도 기쁨이지만 독자 역시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한시 한편 외워보는 여유가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