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 문자옥文字獄, 글 한 줄에 발목 잡힌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
왕예린 지음, 이지은 옮김 / 애플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문자옥,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2008년 국방부 불온서적목록이 발표되면서 그 목록에 들어간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지만 그 중심에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구태의연한 발상을 하는가?’와 사상에 대한 탄압이 여전히 이뤄지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웃지 못한 해프닝은 단지 그때 그 사람들에 한정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군부독재시절을 비롯한 우리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사상 탄압의 전형이 책과 글에 대한 금지로 나타났으며 이를 반증하는 것이 국방부 불온서적목록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권력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가진 자는 지키려하고 못가진 자는 가지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권력투쟁이 결국 인간의 목숨이 왔다갔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역사는 부지기수로 보여준다. 빌미는 바로 글로 남겨진 것들에 집중된다. 이는 말보다 글이 가지는 지속성이나 파급력에 의한 것이다. 이를 문자옥(文字獄)이라 표현하며 중국의 역사 속에서 벌어진 다양한 실례를 찾아 보여주는 책이 있다. 바로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 문자’가 그것이다.

저자는 문자옥(文字獄)이란 관리나 지식인의 글 내용 중에 황제를 비난하는 내용 등을 이유로 처벌을 받았던 것을 가리킨다고 정의하며 중국 역사를 거슬러 올라 시대별로 나타난 문자옥의 사례를 살피고 있다. 글로 남겨진 문자를 통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거나 또는 정치적 상황에 의해 정적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모함의 구체적 증거로 제시되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경우를 찾아 그 전후 사정을 밝히고 있다. 문자옥은 역사를 거슬러 춘추전국시대까지 올라간다. 그 유명한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를 시작으로 청나라 말 소보사건에 이르기까지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분서의 목적은 사상의 통제, 갱유의 목적은 왕권 수호였다.’에서 알 수 있듯이 문자옥은 분명 정치권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상탄압의 형태로 진행된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민중의 마음을 대변했던 지식인들이 문자옥의 주요 대상이었다. 오늘날 지식인의 사명을 이야기할 때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현실과 미래를 살아갈 지혜를 밝히고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문자옥에도 굴하지 않았던 지식인들의 삶을 통해 얻은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문자옥을 만든 사람이나 그 피해 당자자도 모두 지식인이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음을 알게 한다.

이 책을 보면 글이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크게 왜곡되는 가를 잘 알 수 있다. 같은 글도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해석하는 사람의 분명한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 황제들이나 정적들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곡해는 목숨이 달린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헌령비헌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말이 생겨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말이나 글이 상황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목숨을 버리는 사람까지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 힘은 실감하게 된다. 글의 힘이 이렇게 큰 것이기에 글에 담고자 하는 자신의 뜻을 심사숙고했던 선비들의 마음이 새삼스럽게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최근 국방부 불온서적목록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요지는 ‘군대 내에서 국방부 장관이 정한 불온서적을 소지할 수 없도록 한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에 대해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군인이라는 특수신분을 이용해 사상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는 분단이라는 상황을 이해하지만 분단이라는 상황을 이용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적 결정이 문제라고 본다.

‘글과 말을 막아도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이는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삶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지식과 문화를 짓밟는 권력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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