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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소리 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안개 속에 묻힌 도시의 아침을 시작한다. 매년 이맘때면 이런 안개는 익숙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언제나 다르다. 기온의 차이로 안개라 나타나고 햇살로 인해 기온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안개. 그 안개는 내가 수 년 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리고 있던 장막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 눈을 가린 안개를 만든 것이 꼭 사회적 요인만은 아님을 이젠 알기에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리는 기회로 삼는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익숙하다. 세상을 향해 거칠 것 없는 청춘의 시기를 보내던 때 처음 접하면서 안으로만 쌓이는 세상을 보는 불편과 불안 그리고 분명한 분노로부터 스스로를 위안 삼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가 조정래를 잘 알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태백산맥이 집필되는 시기에 대학을 다니며 작가 조정래가 소설에 담고 싶었던 시대의 아픔을 배워가는 시간 동안 얼굴대면 한 적도 없는 낯선 사람이지만 오작 글로 친해진 나만의 익숙함일 뿐이다. 그것은 작가의 현대사 3부작 대하소설이라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발간 순서대로 읽었으며 아직 소중하게 간직한 독자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애를 써서라도 작가의 마음과 친해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관심이 있기에 ‘허수아비 춤’이 발간되자마자 손에 들었고 책을 놓으면서 갸우뚱 거리는 머리로 혼란스러움도 있었다. 무엇일까? 작가 조정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밀려드는 물음 속에 허탈감마저 있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안개 속에 갇힌 듯 한 불투명한 무엇이 꾸물대는 이상한 기분이 떠나지 않았다.
오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라는 ‘황홀한 감옥’의 책장을 덮으며 햇살이 소리 없이 안개를 몰아내듯 불투명이 주는 불안함이 사라진다. 세상을 향한 눈을 가로막았던 안개가 내 스스로 쌓아올린 장막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며 한발 더 나아간 친숙함으로 작가 조정래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음에 만족하게 된다.
이처럼 작가 조정래의 문학세계, 특히 현대사 3부작 대하소설이라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대해 안개를 스스로 걷어낼 기회를 얻은 셈이다. ‘황홀한 감옥’은 문학을 공부하며 작가의 꿈을 키워가는 대학생들의 질문 84가지에 대해 답변하는 형식을 빌러 밝히고 있는 작가 조정래의 문학세계를 통째로 드러내는 자기고백이며 자전적인 인생 고백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태어난 시대를 관통해온 가족사와 작품의 주제와 배경이 되는 시간과 장소에 대 대한 필연적 근거뿐 아니라 작품을 통해 세상과 만나왔던 희모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보여 진다.
험난한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작가로써 후배를 사랑하는 애잔한 마음, 문학이라는 글쓰기가 담당해야 할 시대적 소명의식과 이 중심에 우뚝 선 작가의 사명과 자존심이 담겨 있다. 손자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에서부터 우리민족의 숙명과도 같은 통일에 이르기까지 작가 조정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섭렵했을 것 같은 질문자의 물음에 진솔하며 세심하게 때론 작가의 마음을 담아 때론 앞선 시대를 살아온 어른의 마음으로 하나하나 답하는 그 마음에 사람과 세상을 향한 작가의 사랑이 느껴지는 감동이 전해온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하소설을 발간한 작가 그것도 세 편이나 발간한 작가가 작품에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을 읽어가는 독자의 개인적 조건과 처지에 의해 읽혀지는 것은 제각기 다르기에 작가는 늘 못 다한 이야기가 있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물론 작가의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독자의 마음은 그 내면에 담긴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 있을 것이다. 이는 굳이 소리 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황홀한 글감옥’은 바로 작가 조정래의 속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