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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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구도자의 길을 보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퍼져나가는 책이 있는 모양이다. 무엇이든 시끌벅적해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세상에서 이러한 현상은 자못 기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그것에는 힘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 힘은 굳이 나타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빛을 발하는 햇살처럼 말이다.

‘선방일기’라는 이 책이 그렇다. 조용하고 담담하면서도 그 깊이를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무한한 한 선승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 ‘선방일기’는 1973년 ‘신동아’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 발간한 책인데 우여곡절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다시 발간된 책이라고 한다. 또한 저자인 지허 스님에 대한 행적을 알 수 없어 그저 추정만 할 뿐이라고 하니 신비감마저 더한다.

이 책의 출발이 되는 이야기는 ‘안거’다. 안거란 선원에서 수행자들이 산문 밖 출입을 일절 삼가고 참선 수행하는 것을 말하며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매년 두 차례의 안거를 통해 수많은 스님들이 용맹정진의 시간을 갖는다. 두 차례라는 것은 여름철 음력 4월 15일부터 백중날인 7월 15일까지 진행하는 하안거와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에 1월 15일까지 진행하는 동안거를 말하며 3개월 동안 진행된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안거는 동안거이며 강원도 상원사에서 안거 한철을 보내는 동안 함께한 도반들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감회를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안거를 위해 절을 찾아가면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자신이 한철을 지낼 절에 들어갈 때 행하는 절차와 안거를 진행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사찰의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외부세계와 벽을 치고 수행의 지난한 과정을 걸어가는 스님들이지만 다수가 모여 지내는 일이라 대중사이 벌어지는 이야기는 속세를 살아가는 사람들 못지않게 수선스러움도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였으며 연령대도 다르고 더욱 수행자로서 걸어온 과정도 각기 다른 수행자들이 모여 일심으로 나아가는 구도자의 진중함과 무거움이 전체를 압도하지만 때론 뒷방 조실스님처럼 우스게 소리도 있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동일한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일념으로 정진하는 스님들이지만 생식, 장좌불와, 묵언정진 등 그 모양은 다양하다. 또한 백척간두의 마음으로 수행에 들어갔지만 중도에 낙오하는 스님도 있고 병든 몸으로 수행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스님도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도반들의 안타까운 마음 앞에서는 숙연한 마저 든다. 또한 모든 것을 초월할 것 같은 스님들의 모습을 상상하지만 밀러오는 수면욕, 식욕에 구운 감자를 탐하는 모습 등에서는 인간의 한계를 알 수 있는 애처러움이 밀려든다.

‘선방일기’는 이처럼 목숨을 건 용맹정진의 모습에서 눈물 나게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겹쳐지며 그려진다. 처절한 자기수행, 치열한 논쟁, 중도 탈락하는 도반에 대한 안타까움 등은 그렇기에 안거를 지내는 수행자들의 깨달음을 행한 고독한 행보를 짐작이나마 할 수 있는 수행자의 마음 가득한 열망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래서 더 반가운 책이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 공간이 안거가 진해되는 스님들의 선방이었다. 그 속에서 생활하는 수행자들이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향해 절치부심하는지 때론 선망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 ‘선방일기’ 속 수행자들의 모습을 통해 ‘이른봄 눈처럼 하얗고 한겨울 비처럼 시린 선승의 수행일기’라는 묘사가 그 모든 것을 웅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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