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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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공존은 현실이다
숲에 주는 묘한 느낌에 빠져들어 한동안 숲을 반복적으로 찾았다. 처음 길에서는 그저 모든 나무들이 비슷비슷하게만 보여 무엇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지만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 안정감이 드는 기분에 다시 숲을 찾을 생각을 하게 된 듯하다. 그러길 한두 번씩 하다 보니 보아온 나무와 풀 사이에 구분이 생기고 비슷비슷하게만 보였던 고만고만한 것들에 그들만의 이름이 있고 그 이름만큼 독특한 모양새와 살아온 흔적을 있음도 알게 되었다. 한동안 숲에서 그 숲 속의 군상들만 보다가 어느 날 문득 이 모든 것들이 각기 저만의 흔적을 간직하면서도 어울려 이뤄가는 숲의 전체를 봐야 한다는 당위성에 이끌려 숲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숲 해설가 교육을 받는 동안 생명의 신비로 온통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숲은 다가서면 멀어지고 멀어져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느꼈던 생명의 숲과는 전혀 다른 숲을 경험하게 된다.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에는 생명의 신비, 살아 꿈틀대는 생명들의 생기발랄을 넘어선 다른 무엇이 담겨 있는 듯하다. 단 문장이 모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글에는 쉽게 넘기지 못하는 묵직한 세월이 무게감을 더해간다. 그 무거움은 눈이 걷히며 새싹이 나고 난 싹이 짙어가다 결국 다시 눈 속으로 떨어지는 시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다.

다자인 회사에 다니던 조연주는 회사의 사정에 의해 실직하고 전방에 있는 한 수목원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들어가 식물 세밀화 작업을 하게 된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아버지나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하게만 여기는 어머니와도 살가운 가족은 아니다. 수목원에 출근하며 작업중 만나는 사람인 김중위나 안연구실장 그리고 유해발굴단의 활동 등이 이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미술학원 원장의 자살은 이방인들이 모여 살아가는 작은 읍내에 또 다른 이방인의 죽음에 대한 소문은 깊은 무게감을 더해간다.

아버지
, 지방공무원으로 특정범죄가중처벌 대상인 뇌물수수와 알선수재로 처벌 받아 교도소에 수감 중이며 가족에 대한 부양의 의무와 가족으로부터 소외, 직장 및 생활에서 무능과 비굴함 등에 의해 가족에 대한 원죄적인 미안함과 침묵을 보여준다. 어머니, 그런 남편을 용납하지 못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가족의 끈을 버리지 못하며 딸에 하소연하는 것으로 살아간다. 조연주, 아버지의 죄가 자신의 실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지를 생각하며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성글기만 하다. 어머니와도 살가운 모녀가 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안요한, 수목원 연구실장이며 이혼 후 자폐증이 있는 아들을 키우며 살아간다. 전처에 의해 아들의 자폐증이 그로부터 기인함을 암시하고 있다.

‘숲은 다가가면 물러서고 물러서면 다가와서 숲속에는 숲만이 있었고 거기로 가는 길은 본래 없었다.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여야 보는 것일 터인데,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 비 맞고 바람 쏘이고 냄새 맡고 숨 들이쉬며 여름을 보냈다.’

‘내 젊은 날의 숲’의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와 딸,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 죽음과 삶 등 모든 것은 이렇게 관계 형성에 무감각하다. 숲을 구성하는 다양한 존재들이 각기 자신들만의 독특하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듯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아버지의 죽음, 미술학원 선생님의 자살, 숲 해설사 이나모의 죽음, 나뭇잎만 들쳐도 인골이 드러나는 자등령, 연구실장 아들의 자폐증 등 온통 가슴을 압박하는 무거움이다. 

그렇더라도 김훈의 섬세한 묘사력은 돋보인다. 숲 속의 복수초, 얼레지, 목련, 민들레, 패랭이꽃, 자작나무, 서어나무 등 초본과 목본에 대한 묘사는 그 실체를 면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려내지 못할 것이다. 그가 숲 속을 얼마나 오랫동안 거닐며 그 모든 것을 눈으로 가슴으로 담았을지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눈이 쌓여 있을 때 왔다가 다시 내린 눈이 내릴 때 까지 숲에서 보낸 젊은 날의 숲은 결코 젊지 않다. 삶과 죽음이 늘 상존하는 숲, 나무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지만 결코 공존하지 못할 것 같은 것들이 모여 관계를 형성하며 숲을 이루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반영이라면 생명이 넘치는 숲의 또 다름 면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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