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척기 -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안재홍 지음, 정민 풀어씀 / 해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한편의 글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민족정신을 살피다
기록문화가 보여주는 놀라운 점은 참으로 다양하다. 옛 사람들의 남겨진 글들에서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알게 되고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공유하며 잊혀진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된다. 기록문화가 없었다는 결코 알지 못할 많은 것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되 살아 나는 기적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옛글도 오늘을 살아가는 시대정신에 의해 새로운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글자 속에 갇혀 묻혀 지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옛 사람들의 글을 오늘의 언어로 새롭게 살려내는 일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백두산 등척기’는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의미를 시사해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한말 독립운동가이며 정치가이자 사학자였던 안채홍이 백두산을 등산하며 자신의 소감을 사실적으로 담은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랜 된 시절의 글이 아님에도 묻혀있던 책을 발굴하여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고 그 글이 가지는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안재홍의 시대를 아파하는 시각과 정민 교수의 섬세한 글맛이 어울리는 이 책을 통해 잊혀진 기록문화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우리 조상들은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탐방하고 그 소감을 담은 글을 ‘유산록’이라는 형태로 많이 지었다. 그리하여 가보지 못한 자연과 우리 산하에 대한 그리움을 그 글을 통해 대신하곤 했다. 이 ‘백두산 등척기’도 한말 신문에 연재되어 많은 사람들의 가보지 못한 백두산 탐방에 대한 소망을 대신한 글이 되었다고도 한다. 

‘백두산 등척기’에는 안재홍이 백두산을 탐방하는 1930년 7월 24일부터 8월 7일까지의 16일간의 일정이 소상하게 담겨 있다. 탐방 일정별로 보고 느낀 일제침략기 우리 산하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저자의 따스한 민족애가 담긴 눈으로 살펴본 결과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특히,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저자의 감회를 비롯하여 과정 하나하나에서 저자는 민족문제, 국경문제, 우리민족과 함께 해온 전설과 풍문 그리고 백두산 상태 등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독립운동가 다운 저자의 민족적 시각은 백두산 정계비를 보며 한층 강하게 나타난다. 청나라와의 국경문제, 간도 땅에 대한 아쉬움, 만주사변으로 소실된 백두산 정계비의 모습은 마지막 고증자료가 되기도 했다. 

‘빼곡하고 엄숙하고 아스라하고 아마득하며 거침없고 유유하고 신비하고 고요하다. 그윽하고 깊숙하고 웅장하고 장대하며 순후하고 거대함이 말로는 다할 수 없고 형용하기 어렵다.’

백두산 탐방 과정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실감나는 묘사는 글 곳곳에 살아난다. 하지만 자연의 묘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일제침략으로 피폐해져가는 사천과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안타까움 또한 나타내고 있다.

글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도 한다. 저자 안재홍이 민족과 함께 살고자 했던 삶의 지향의 반영일 것 같은 글들 속에서 느껴지는 정서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글을 현대적 언어로 다시 살려낸 정민 교수의 노력 또한 돋보인다. 또한 이 책에는 독립운동가 안재홍의 삶을 살필 수 있는 부록이 실려 있어 저자와 글이 주는 느낌을 일치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계화의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민족적 감정을 일깨우는 글은 시대성에 뒤처진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민족의 미래를 생각할 때 시대를 아우르는 정신은 어디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한편의 글 속에 담긴 정신에서 오늘을 살아갈 지혜를 살핀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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