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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벨로의 마녀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두빈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힘을 깨워라
기적이라고 불리는 이성적 판단으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접할 때 신비로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한 느낌을 무엇으로 불러도 상관없지만 알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두려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러한 체험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한번쯤은 경험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 반응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무의식중에 지나가버리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알지 못하는 묘한 느낌에 대한 호감으로 다양한 형태의 체험을 시도해 보기도 한다. 이 두 경우의 차이를 무엇일까?
신비한 영적 세계라는 이성적 판단으로 설명되지 않은 경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그 세계에 대한 체험담을 내 놓기도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분명 있고 또 차원을 달리해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무한한 힘을 느끼며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탐구나 자아실현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진행형인 경우도 많다. 그러한 분야에 탁월한 필력을 나타내는 작가와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파울로 코엘료와 그가 발간한 작품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간 코엘료는 신비로운 영적 체험이나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자아의 힘을 믿고 이를 바탕으로 꿈과 자아를 실현해가는 이야기를 주로 발표해 왔다. 사람들은 그러한 코엘료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고 또는 공감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길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 코엘료는 그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본능, 사랑, 자유, 꿈, 신비한 능력, 영적체험 등을 소재로 하여 일상에 묻혀있던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만들었고 이는 각국의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포르토벨로의 마녀’ 역시 그러한 부류의 소설이다. 이 이야기의 중심 역시 ‘사랑’이지만 소설의 구성이 기존 발표한 작품들과 조금의 차이를 보인다. ‘아테나’라는 여자를 둘러싼 그녀의 출생, 성장배경, 양부모, 애인, 친구 등 직, 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그녀를 회고하는 방식의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하지만 입양과 성장과정 그리고 포르토벨로라는 지역에서 죽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까지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다. 집시와 이방인 사이에서 태어나 고아원에 버려진 불우한 출생과 낯선 문명의 사람들에게 입양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운명처럼 겪게 되는 이상한 경험 그리고 노래, 춤, 서예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모습과 그러한 자신을 이끌어주는 스승. 자란 환경이나 시대 나타나는 모양만 달랐지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을 특화시켜 보여준다. 코엘료가 가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아닌가도 싶다.
화형에 처해진 마녀는 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종교라는 틀로 바라볼 때도 그렇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옳다고 믿는 세상에 대한 각성과 문제제기를 불러오는 사람들에 대한 누명일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마녀라는 말로 우리가 이성과 과학적 판단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씌운 사람들에 대한 편견일수도 있음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
‘포르토벨로의 마녀’에는 파울로 코엘료가 그간의 작품에서 이야기한 ‘종교의 여성성’이나 ‘사랑의 여성성’과 신비한 영적체험이나 자아탐구에 그의 탐구과정에서 얻은 총화가 담겨있다고 할 정도로 섬세한 묘사와 깊이 있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가 ‘아테나’라는 여자를 통해 보려주고 싶은 것은 분명 ‘사랑’이다. 그 사랑에는 에로스와 아가페, 관능과 욕망, 모성과 인류애 등의 사랑의 범주에 포함되는 전반적은 모습이 다 등장하지만 무엇보다 중심적인 것은 사랑의 여성성이라는 점이다. 잉태와 출산을 통해 모든 근본적인 것들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여성성의 회복이야말로 사랑의 근본이며 인간관계와 세상의 모순을 풀어갈 힘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마녀란, 직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여성, 자신을 둘러싼 것들과 대화를 나누는 여성,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이다.’라고 말하는 파울로 코엘료의 내재한 여성의 힘과 더불어 주체적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