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의 백합 을유세계문학전집 4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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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사랑에 대해 대중가요만큼 적절한 묘사를 하는 것이 있을까? 특히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대중가요의 가사는 심금을 울리고 때론 넋을 빼놓기에 충분하게 사랑하는 사람의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 놓고 있다. 그 가사들은 은밀함을 넘어 때론 격정적인 마음을 쏟아내기도 한다. 한 여자 가수의 사랑에 대한 노랫말에 흠뻑 빠져 지내는 요즘 사랑의 감정과 그 느낌을 전달하는 도구로써 음악과 시 그리고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애절한 심정을 대하면서 깊어가는 가을의 또 다른 정취를 음미하곤 한다.

얼마 전 ‘고리오 영감’이라는 작품을 통해 접했던 발자크의 문학은 작품 속에 담고자 하는 대상과 주인공들의 심정을 묘사하는 자연스러움과 놀랍도록 섬세함으로 기억되는 작가다. 자신에 눈에 비친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그 내면으로 인도하며 길지 않은 문장에 담아내는 작가의 글 솜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런 감동을 이어가고자하는 기대감으로 다시 잡은 작품이 ‘골짜기의 백합’이다. 이 작품은 발자크의 ‘인간극’ 시리즈 중 풍속 연구의 ‘시골 생활 전경’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적 상황으로는 왕정 복고와 나폴레옹의 백일천하를 겪던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프랑스의 상황을 무대로 하고 있다.

‘골짜기의 백합’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감동이 있다. 주인공 펠릭스에게는 여러 사람의 여인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이 소설의 핵심이라 할 앙리에트 드 모르소프 백작부인과 나눈 사랑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우선 펠리스는 스스로 규정하기에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점은 그가 보여주는 여인들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담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진출하는 청년기인 인생의 전환기에서 맞이하는 이성에 대한 폭발적 감정이 이후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그 중심에 앙리에트에 대한 사랑이 있는 것이다.

펠릭스와 앙리에트 사이의 사랑이 숭고한 정신적 사랑으로 보인다는 점은 어쩜 둘이 감내해야 했던 사랑의 고통이 얼마나 크게 작용했을지 짐작하게 된다. 사랑을 하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전부 이해한다는 것은 어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마지막 편지에 털어 놓은 앙리에트의 고백이 그것을 증명할 것이다. 사랑은 이성에 대한 욕망을 전재로 하기에 육체적 욕망을 감추거나 억제하는 그들의 모습은 숭고하며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여인으로 감당하기 힘든 욕망에 사로잡히면서도 한 남자의 부인 아이들의 엄마로써의 지위를 지켜가기 위해 벌이는 스스로의 투쟁이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는 것이리라.

한편, 이성에 대한 뜨거운 청춘의 욕망을 정신적 사랑으로 만족하기에는 펠릭스는 미숙했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진정한 사랑을 일깨워주는 앙리에트와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더들리 부인과의 사랑이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이뤄가는 과정일 것이다.

한 여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고 그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고뇌가 무엇인지를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고리오 영감’에서처럼 상류층 여인들이 등장하며 청년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후견인을 자처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이상하리만치 그러한 상황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모습이 의아 하지만 시대상황의 표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펠릭스의 현재의 연인 나탈리의 편지는 냉정하고 객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시각을 보여주기에 독자의 마음을 대변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 앞에 이기적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준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자신이 하는 사랑의 표현 방식이기에 스스로는 만족하지 않을까? 순수함, 욕망 그리고 현실 사이에 늘 갈등하는 것이 사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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