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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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은 애통이고, 의리는 의리다
그가 누구든 한 사람의 목숨은 귀중한 것이다. 하지만 귀중한 목숨을 놓고 그 가치를 따지는 것은 시대마다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무엇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치는 늘 상대적인 것이기에 무엇을 누가 어떻게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일쑤다. 역사적 사건을 볼 때도 마찬가지지만 현실정치의 최 일선에 있는 정치인들을 보더라도 당리당략이나 개인의 목적에 의해 국가적 사안의 중요한 일에 대한 처리는 달라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 역사에서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장 유명한 것이 혜경궁 홍씨의 기록이라 알려진 ‘한중록’에 대한 해석이지 않을까 싶다. 지아비가 시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혜경궁 홍씨(1735~1815)의 역할을 문제 삼는 것이리라. 한중록은 바로 임오년에 일어났던 임오화변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의 심경을 밝힌 글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한중만록(閑中漫錄), 읍혈록(泣血錄) 이라고도 부르는 이 기록은 다양한 필사본과 이본이 존재하여 그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다.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아들 정조 사후인 혜경궁 홍씨 환갑을 넘어 네 번에 걸쳐 기록한 글이며 남편인 사도세자에 대한 글과 혜경궁 홍씨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혜경궁 홍씨의 친정을 변호하기 위한 글 두 편이 그에 해당된다.

이 책 ‘한중록’은 문학동네에서 발행한 한국고전문학전집 중 하나로 한중록을 변역한 서울대 교수 정병설의 책이다. 저자는 다양한 필사본과 이본을 참고하여 현대적 언어로 알아보기 쉽게 번역했으며 저자가 이해한 나름의 편집방향을 가지고 혜경궁 홍씨가 집필했던 순서와는 다른 순서를 잡아 배열하고 있다. 이는 독자들이 그동안 알고 있는 한중록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당시 시대상황과 더불어 보다 깊이를 더하려는 의도라고 밝힌다.

저자는 한중록의 번역에 있어 필사본 한중록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임오일기, 모년일기, 현고기, 대천록을 비롯하여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한 가암유고, 몽오집 등 다양한 역사서와 사료를 비교 검토하면서 객관성을 유지하려 최선을 다했고 또한 한중록과 관련된 다양한 해석에 대해서도 자료를 근거로 자신의 견해를 언급하고 있다.

이 책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의 기록을 모아 ‘내 남편 사도세자’, ‘나의 일생’, ‘친정을 위한 변명’으로 구분하고 있다. 우선 ‘내 남편 사도세자’는 지아비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 자신이 가진 생각을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세자가 죄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것이다, 이는 영조,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왕권의 정통성 문제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적극적인 의견의 피력으로 보인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가 어릴 때부터 영조와 그 어머니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영조의 엄격한 질책이 원인이 되어 심리적 압박감을 가졌으며 그로인해 병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조세자의 죽음에 있어 영조나 사도세자 어느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라는 의견으로 보인다.

제2부 ‘나의 일생’은 혜경궁 홍씨가 아홉 살 어린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궐에 입궁하는 과정 등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궁중에서의 생활 그리고 친인척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제3부 ‘친정을 위한 변명’은 아들 정조가 죽고 정순왕후가 대리 청정하던 시기에 집필되어 몰락해가는 친정과 어린 순조의 안위를 걱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변화된 상황에 대한 좌절이나 분노 등 혜경궁 홍씨의 격정적인 심경이 잘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결해야 마땅하다고 하는 정치적 사건의 중심에서 아들 정조의 안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목숨을 부지하며 온갖 굴욕을 참으며 살았다는 혜경궁 홍씨 스스로의 심경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당대 권력의 중심에서 온갖 권위를 누리면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항하며 좌절과 분노라는 삶을 살았다. 아홉에 궁중에 들어와 팔순이 넘는 세월동안 권력을 향한 정치싸움의 중심에서 살았기에 심적 고통이 얼마나 클지 짐작 가는 바다.

이 책은 그런 혜경궁 홍씨의 심경을 이해한다는 저자의 기본 생각이 담겨있다. 그렇기에 당시 목숨을 담보로 한 정치적 사안의 옳고 그름보다는 혜경궁 홍씨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하지만 혜경궁 홍씨의 기록 한중록을 통해 권력의 정점 궁궐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며 변역자의 지적대로 조선시대 산문의 맛을 느끼기에도 충분한 책이다. 또한 한중록 깊이 읽기를 통해 역사적 사건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기초를 제공해주고 있어 더 가치 있는 책으로 보인다.

독자로써 한중록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에 대해 그 진위를 판단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지만 한 여인의 몸으로 ‘차마 망극하여 죽어 이를 모르고자’ 했던 혜경궁 홍씨의 심경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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