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만과 편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전통과 새로운 가치관 사이의 혼란스러움
현대사회는 개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규범들이 점점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다양한 법규들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개인들의 이상과 가치관이 행동을 규정하는데 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을 볼 때 전통적인 가치관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은 여전히 불쾌함을 드러내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이미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난 이 시대의 가치관이 형성되었다는 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경향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마도 남 녀 간의 사귐이나 결혼 그리고 결혼 후 출산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바로 이러한 결혼관에 대한 일면을 잘 묘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당시 영국의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면서 개개 주인공들의 면모를 적절한 묘사로 당시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한다. 저자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은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결혼하여 집을 떠나거나 아니면 부모님과 형제들을 보살피며 독신으로 늙어가던 당시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살아가지만 어린 시절부터 소질을 보였던 글쓰기를 하며 결혼하지 않고 4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영국의 하트포드셔의 한 마을이 주 무대인 이 소설은 다섯 자매가 함께 사는 베넷가의 딸들이 결혼 적령기에 겪는 심리적 갈등과 당시 결혼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배우자의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어느 시대나 결혼은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거나 상승시키는 작용을 했던 한 측면이 있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부를 향한 사람들의 욕구가 결혼이라는 절차를 통해 성취하려는 마음이 그것이다. 제인과 빙리,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샬렛과 콜린스, 리디아와 위컴의 결혼으로 살펴본 이들의 결혼관은 조금씩의 차이를 보인다. 온순하고 착한 맏딸 제인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며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오해로 결혼의 어려움에 봉착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혼에 이르게 된다.
신분상승의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발현이든 여성의 역할 변화나 여성의 사회적 해방이라는 거대한 가치를 말하지 않더라도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결혼을 대하는 모습은 전통적인 가치와 새로운 가치간의 충돌에 의한 혼란스러움이 있다는 점이다. 딸들의 결혼을 둘러싼 부모의 모습 역시 현대적 가치기준으로 볼 때 이해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 적령기의 사람들에게 결혼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 전통적인 가치관이 중심을 이뤘던 시대에는 가문이나 지위, 경제력 등 사회적 규범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대에 들어서 그러한 비중이 줄었다는 점 보다는 그러한 사회적 규범에 의한 기준은 여전하면서도 개인적 감정이 더 강화된 측면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것도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겐 사랑이라고 하는 감정보다는 사회적 배경이나 지위가 더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오직 사랑만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더라도 결혼에 대한 오늘날의 생각을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은 꼭 해야만 하는 통과의례였지만 지금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사항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무엇보다 결혼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가 달라진 근본적 이유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