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도 병인 양하여 - 옛가락 이젯가락
손종섭 지음 / 김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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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이 주는 뜻과 풍류
문학작품을 대하는 사람 중에는 우리 선조들의 작품에 대한 편견이 있다. 고전이라고 하면 의례껏 서양고전을 먼저 떠올리고 또 서양고전이 전부인 양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이러한 모습 속에는 은연 중 스며들어 있는 문화 사대주의의가 꿈틀대는 듯싶어 안타까움이 있다. 

우리 고전을 접할 때마다 선조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듯 다정다감함이 있어 애써 찾아보곤 한다. 지은이가 누구인지 모르는 실명씨의 작품이나 서슬 퍼런 사대부의 속내를 알게 하는 작품,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감정을 나타내고 있는 기생들의 작품 그 어느 것 하나 살갑지 않은 것이 없다. 살아온 삶과 감정이 비슷하고 그 속에서 공감하는 바가 많아 더 정겨운 우리 고전에 대한 애착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다정도 병인 양하여’는 바로 그런 우리 선조들의 문학작품 중에서 시조를 선별하고 저자 손종섭의 눈으로 본 감상과 자신의 작품을 한데 엮어 펴낸 책이다. 저자는 시조라는 작품에는 우리 민족 정서가 담겨 있고 가장 오랫동안 민족의 애환을 담아낸 것이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유일한 문학 형식이라고 평하고 있다. 또한 시조에는 계층 간 소통의 도구였고 군왕을 비롯하여 사대부, 학자, 양반, 규수, 기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대중문학이라는 특징이 있다고 본다.

이 책에는 조선조를 중심으로 한 시조 300여 수가 담겨 있으며 주요 지은이로는 이조년, 정철, 윤선도, 홍랑, 매창, 황진이 등이 있다. 이들은 관료, 문인, 천인, 기녀 등의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자신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동안의 삶을 기반으로 한 애환과 깊은 가슴속에 담아둔 지향하는 뜻을 담고 있기에 수백 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오늘날에도 공감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송시열의 청산도 절로절로, 이정보의 묻노라 부나비야를 비롯하여 작가불명의 말은 가자 울고, 보고만 있을 것을, 임도 잠도 안 오는 밤에, 홍랑의 멧버들 골라 꺾어, 이조년의 다정도 병인 양하여, 이매창의 이화우 흩날릴제, 황진이의 상사몽, 청산리 벽계수야 등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뿐 아니라 새롭게 만나는 작품들 하나하나 반갑기만 하다. 이러한 문학작품을 통해 살펴본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 다르지 않다. 삶의 현장에 고스란히 드러나는가 하면 남녀 간의 애뜻한 사랑과 이별, 그리움도 있고 선비들의 우국충정과 임금을 향한 마음 그리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호연지기 또한 담겨있다. 

저자는 대상이 되는 시조를 놓고 자신만의 감상법이 있는 듯하다. 먼저 시조가 담고 있는 본래의 감정을 살려서 읽고 또한 스스로 이야기를 꾸며 다시 읽고 마지막으로 현대의 감정을 담은 지조 창작으로 맺고 있다. 이는 한 작품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동일한 작가든 비슷한 감정을 담은 시조를 찾아내 함께 읽기도 한다. 시대와 작가가 다름에도 동일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비교감상도 흥미롭다.

작품 속에 나타난 우리 선조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 비해 훨씬 감성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온 듯 보인다. 아마도 시간이라는 상대적인 흐름에 연유한 것이 아닌가 한다. 모든 것이 분, 초를 다투는 현대인의 삶에서 배꽃이 흩날리는 모습이나, 기운달이 서쪽 창에 비추는 정경이나 추운 겨울밤을 한자리 베어내어 봄 이불 속에 감춰 두고 임 만난 날을 손꼽아 기다릴 마음의 여유는 자리를 잡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은 느긋한 마음으로 자연을 벗하고 사람과 사람사이 더 애뜻한 감정이 살아 숨 쉬고 있었을 것이다.

시조든 다소 긴 사설조이든 아니면 산문이라도 그 글에서 맛이 다름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시간의 흐름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현대인들이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을 벗하고자 함도 그 근본에는 바로 시간에 대한 다름 느낌을 얻고자 함이리라. 그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우리 고전 작품과 함께 한다면 우리 선조들만의 맛과 멋을 오늘날에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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