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무게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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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범주가 갖는 감정의 이중적 시스템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딸아이가 5살쯤에 벌어진 일이다. 엄마와 낯선 동네 어떤 집을 방문하여 놀다가 사라졌다.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 엄마는 한참 이야기를 하던 중 딸아이가 없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급하게 전화를 했다. 낯선 곳에서 아닌 사람 하나 없이 헤매고 있을 아이 생각에아는 사람들을 그 동네로 소집하고 한참을 찾고 나서도 아이의 행방을 몰라 소동을 벌이고 급기야 파출소에 신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 실종신고를 하려가던 길에 울며 나타나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빠를 본 첫마디가 놀이터에서 오빠가 밀쳐서 넘어졌다고 속상함을 내비치는 것이다. 딴에는 그것이 못내 서러웠던 모양이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틈에서 섞여 놀다보니 엄마와 떨어졌다는 생각도 못하고 정신없이 놀다 그때서야 엄마가 없다는 두려움도 있었나 보다.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아이를 찾아다니는 순간 온갖 나쁜 생각이 들고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 후론 어디를 가던 아이는 시각이 닿는 범위 안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다.

‘침묵의 무게’를 읽어가는 동안 그때의 기억을 떨칠 수 없었다. 부모에게 아이들이라는 존재가 어떠한지 충분히 알기에 말이다. 이 책은 그러한 가족 구성원 간에 벌어지는 감정의 변화 상태를 담고 있다. 자식과 부모, 형제 그리고 이웃 간에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의 변화를 아이의 실종이라는 계기를 통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일곱 살 여자 아이 칼리 클라크와 페트라가 가족들이 잠든 사이에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사라진 그 아이와 가장 친한 이웃의 아이도 함께 보이지 않은 것이다. 네 살 이후 말을 하지 않은 딸아이에게는 든든한 오빠가 있었지만 오빠조차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한다. 잠옷을 입은 채 신발도 신지 않고 사라진 아이들을 찾기 위해 온 동네 사람, 지역 보안관에 연방경찰까지 동원되어 수소문하지만 흔적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 있었던 유괴성폭력 사건으로 희생된 아이의 엄마가 뭐라도 돕겠다며 나타나 사라진 아이들의 부모는 더욱 긴장하게 되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게 된다.

‘선택적 함묵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던 칼리, 가족 모두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답답함을 가지지만 특별한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더욱 가슴 아픈 상황이다. 또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에 오는 아빠는 술중독자로 아빠의 역할에 등한시한 사람이다. 하지만 다정한 엄마와 든든한 오빠가 있기에 잘 견뎌내는 칼리에게 말하지 않은 원인이 아빠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실종사건에서 아이들을 발견한 후의 일이다.

이 책은 가족 구성원간의 소통, 이웃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감정적인 문제 등에 얽힌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 흐름을 잘 드러내 놓고 있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될 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기에 서로간의 감정적으로 부딪치는 모습에서는 현 우리 사회의 가족의 일상을 보는 듯 싶다.

가족 구성원에게 닥친 불행한 일은 사고 당사자에만 국한된 불행이 아님은 누구나 알고 있다. 또한 빈번하게 그려지는 문학작품의 소재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경우를 접할 때마다 가슴 먹먹함을 느끼는 것 역시 누구나 공감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의 근거가 되는 가족이지만 때론 그 가족의 구성원에 의해 씻지 못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이기에 말하지 못하는 일이나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가슴에 묻어두고 오랫동안 아파만 하는 일들은 부모나 자식 또한 형제간이라는 특수한 관계 때문에 더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리라.

침묵의 무게에 등장하는 가족 간의 갈등이나 칼리의 ‘선택적 함묵증’도 바로 이런 가족 내의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특히, 이 책은 아동 성폭행과 가정에서의 자녀 학대, 부부간의 폭력과 소통의 부재 등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한 개인에게 그리고 속한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크고 높다. 그 가족이 혼란스러운 현대사회의 문제를 극복해가는 근간이 될 수도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가족이라는 범주 속에서 진행되는 온갖 폭력은 이를 해결해 나갈 사회적 시스템의 구축을 필요로 하는 현실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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