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2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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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세상을 이겨가는 힘
문경지교(刎頸之交), 단금지계(金蘭之契), 붕우책선(朋友責善), 교칠지교(膠漆之交), 관포지교(管鮑之交), 간담상조(肝膽相照), 지란지교(芝蘭之交) 이 모든 사자성어의 공통점은 벗(朋)에 관한 이야기며 벗 사이 굳은 우정을 전해주는 것이다. 소통이 화두로 등장한 현대에 이르러 소통이 계층 간이나 세대 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마음 열어두고 속내를 보여도 부끄럽지 않았던 벗에 대한 옛 사람들의 사귐에 부러움만은 더욱 아닐 것이다. 현실의 삶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해가는 생활에서 사람들 사이 사귐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소망하는 것이 아닐는지.

옛글을 찾아보다 늘 부러움을 느끼게 되는 부분은 화려한 문장도 뛰어난 학문도 아닌 그들의 사람 사귐에 있었다. 조선조 말 소위 백탑파라 칭하던 북학파 실학자들 사이의 벗의 사귐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이야기를 그려놓고 있는 문학 작품을 읽으며 다시금 그 부러움에 먹먹해지는 가슴으로 한동안 먼 하늘만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부러운 사람 사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저자 정은궐의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이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후속작인 이 이야기는 조선 말 사대부 자재들이 성균관 유생을 지내고 과거에 급제하여 규장각 각신으로 분권된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서 담고 있다. 

대물 김윤희, 가랑 이선준, 걸오 문재신, 여림 구용화가 그들이며 이중 남장을 하고 사내들 사이에서 더 사내다운 기운을 펼치는 대물 김윤회가 규장각 각신으로 규장각이 있는 궐내에서 여러 대신들과 왕 그리고 ‘반궁의 잘금 4인방’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치밀하게 그러내고 있다. 분에 넘치는 왕의 보살핌에 시기와 질투 그리고 온갖 위험요소를 극복해 가는 그들의 재기 넘치는 활동은 잠시라고 한눈을 팔 틈을 주지 않고 전개된다. 더욱 동생 윤식을 향한 누이 윤희의 사랑은 남매 사이의 정을 넘어 가슴 따스한 인간애를 보여주고 있다.

홍벽서의 주인공을 찾으려는 관아들과 청백서가 나타나 더욱 혼란스러운 정국, 남장 여인을 둘러싼 온갖 소문에 이어 궁녀 겁탈사건에 휘말리는 대물 김윤희, 여전히 무거운 침묵으로 가족을 빌미로 압박을 가하는 가랑의 아버지 우의정, 도무지 앞뒤를 종잡을 수 없는 왕의 행동까지 이 이야기의 흐름은 긴장감과 탄탄한 구조가 더욱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장면으로 여림 구용하의 암행어사로 나가 활동하는 장면은 보낸 왕이나 책을 읽는 독자들의 허를 찌르기에 충분하다.

노론과 소론, 남인으로 이어지는 당파싸움, 규장각을 둘러싼 중앙관제의 권력 다툼, 조선시대 결혼제도의 허점, 어지러운 사회상 등을 이야기 하면서 교묘하게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엮어내는 저자의 글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임금과 관계나 대신들 사이 그리고 문제를 풀어가는 4인방의 행동에는 다소 무게감이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또한 4인방의 성격 규정이 더 확실한 차이가 있었으면 싶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어쩜 이점이 이 이야기의 장점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헌 것을 새것으로 경계하고, 새것은 헌 것을 배척하는 것이 변화가 정한 이치’라고 왕에게 직언하는 이선준의 이야기는 정치제도나 사회구조에만 국한되어 적용됨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는 세대 간, 계층 간 더욱 벗이라고 하는 사람 사이의 소통 역시 늘 이러한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함이리라.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서로를 향한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비로소 그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하리라 생각해 본다.

나는 누구와 지란지교(芝蘭之交)의 맛을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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