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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작품으로 말하다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자기 삶의 당당한 주인공을 만나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난 세상이다. 그 세상을 살아가기 또한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가 허다하다.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어려운 세상살이는 사람이 살았던 어느 시대이고 있기 마련일 것이다. 그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 가는 자신의 의지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런 희망이 있기에 온갖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담담하게 현실을 헤쳐 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전형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고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서 때론 위안 받고 때론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찾아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역사 중 비교적 가까운 조선시대 사람들 중에서 온갖 제약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이 바로 여성이고 그 여성 중에서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기생이 아니었을까 싶다. 남성 위주의 사대부 사회가 조선이었기에 그 사회적 신분이 미천한 기생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기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오늘날에 와서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술판에서 몸을 팔아야 했던 불행한 여성에서 한 시대의 문화를 이끌었던 당당한 여성으로 말이다.
저자 이은식의 ‘기생, 작품으로 말하다’는 바로 이런 기생들의 운명을 그들의 작품을 통해 살피고자 하는 책이다. 어쩌지 못하는 운명과 태어난 시대에 굴하지 않고 가슴에 담은 뜻을 시대를 거슬러 펴왔던 그들을 뜻이 담긴 시문학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크게 2부로 나누어진 이 책은 1부에서 ‘기생’이라는 여성이 역사에 등장하고 그 사회적 신분이 어떠했으며 그들과 연관이 많은 사회적 관계를 살피고 있다. 하여, 우리 역사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조선에 와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밝힌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말과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백인 창녀와 혼혈 창녀’라는 여성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제도로 존재한 특수 전문직’으로 기생 집단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은 ‘사회구조적 시각’으로 기생을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2부는 이 책의 제목처럼 기생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시를 중심으로 기생의 삶과 그들의 문화, 여성으로써의 뜻 등을 살피고 있다. 일찍이 널리 알려진 황진이를 비롯하여 매창, 두향 등 시, 서, 화, 춤, 음악 등 예능적 소양을 갖추고 그를 능히 표현할 줄 알았던 그들의 애달픈 속내가 담긴 시 속에 애잔함과 더불어 한편 당당함까지 엿볼 수 있다. 또한 빠질 수 없는 충절의 대명사 논개를 통해 태어난 나라에 대한 의로움도 물론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기생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 시와 가사문학의 흐름에 기생들의 작지 않은 역할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에 이르는 동안 잊혀 지거나 소홀하게 다뤄온 우리문학에 명맥을 이어온 그들의 시는 개인적인 외로움이나 신세한탄, 님을 향한 속내를 보이는 것이 주류를 이루지만 시대를 읽고 자연을 노래한 작품들에서 보이는 탁월한 감성과 작품성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비교적 작품이 많이 남아있는 황진이와 매창으로 보인다. 특히 매창의 시를 통해 그와 교류했던 유희경이나 허균 등의 삶 또한 자세하게 살필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신분적 한계에 밀려 위항문학으로 자신들의 뜻을 펼친 중인 이하 문인들에 대한 귀중한 자료도 살필 수 있어 조선시대 문학 전반에 대해 알 수 있게 한 점이 큰 장점이라 생각된다. 또한 이황과 두향의 편에서는 음악을 통해 교감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려가는 저자의 독특한 글맛을 느낄 수 있어 이 책의 백미가 아닌가 한다.
‘옛 이야기 한 꼭지’나 ‘기행문’은 책을 읽어가는 맛을 더해준다. 특히 기행문의 현장감 있는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오늘 현시점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고 할 것이다. 하지만 ‘기생, 작품으로 말하다’라는 책 제목 그대로만 본다면 자못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면이 있다. 앞선 언급한 ‘조선시대 문학 전반에 대해 알 수 있게 한 점’이 여기선 글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방해요소로도 등장한다.
무엇을 평가하는 데에는 그 평가자와 시대정신에 의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잘못 매도될 수도 있는 기생을 ‘제도로 존재한 특수 전문직’으로써의 기생으로 인식확장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본다.
여기저기 단편적으로 접하며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던 매창의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올 여름 넉넉잡아 시간 반이면 찾아갈 수 있는 부안 땅 매창 무덤에라도 찾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