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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알 이야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26
크레티앵 드 트루아 지음, 최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11월
평점 :
중세 기사와 신화의 탄생
우리가 살아가며 누리는 온갖 유, 무형의 문화유산은 어느 한순간 뚝딱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한 순간 어느 한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역사와 시간과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어느 특정인의 노력만을 생각하게 된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 역시 저자의 순수한 창작물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 저자가 살아오는 동안 영향 받았던 모든 문화유산과 경험의 총화라고 보는 것이 합당한 평가가 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정신문화의 총화라고도 할 수 있는 ‘신화’라는 것 역시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더하기 빼기를 반복하며 시대정신과 호응하며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유, 무형의 정신문화나 신화, 문학작품들이 이렇게 인간의 역사와 그를 온 몸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것을 모으고 기록하며 새롭게 만든 한 사람의 노고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기억 속 수많은 위인이나 위대한 사상가, 작가들이 오늘까지 그들의 창작물과 더불어 당당히 살아있는 근간이리라.
중세문학의 대표적인 이야기 거리가 종교와 신화가 아닌가 한다. 그 중에서도 브리튼의 역사와 켈트족의 신화 그리고 기독교적 요소가 결부되어 있는 아더왕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아더왕과 그라알이라는 ‘성배’의 효시가 되는 작품을 접하게 된다. 12세기 무렵 프랑스에서 활동한 작가,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그라알 이야기’다.
[그라알 이야기]는 크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하나는 자신의 이름이 페르스발 루 갈루아라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소년이 자신이 살던 숲에서 어느 날 무장한 기사를 만나 호기심을 발동하기 시작하면서 출발하고 있다. 빛나는 갑옷과 무기들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는 기사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기사가 되는 방법이 아더왕으로부터 임명되는 것을 알고 왕을 찾아 홀어머니를 떠나 여행을 하게 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기사로써 용맹성을 떨치게 된 소년은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에 낯선 곳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창’과 ‘그라알’을 보게 된다. 창과 그라알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갖지만 물어보지 못하고 이것이 훗날 불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이야기의 흐름과는 달리 또 하나의 이야기는 아더왕의 조카이자 기사인 고뱅으로 그는 무고죄에서 벗어나 기사와 가문의 명예를 찾는 길을 떠난다. 기사의 영예를 찾는 길에 ‘항상 피가 흐르는 창’과 연관이 되어 지고 그 창을 찾아가는 여정이 펼쳐진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려가는 ‘그라알 이야기’는 다소 허무하게 결말도 없이 끝나고 만다. 역자의 작품해설을 보고서야 이 이야기가 미완성의 작품임을 알게 되지만 그렇더라도 혼란스러움은 멈추지 않는다. 그라알 즉 성배에 대한 이미지 형성만 있을 뿐 구체적인 제시도 없고 단지, 중세 두 기사의 용맹성과 명예를 찾는 험난한 여정만이 들어올 뿐이다.
어떤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는 동안 특정 신화로 완성되기까지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이 ‘그라알 이야기’가 바로 훗날 ‘아더왕의 이야기’와 ‘성배 이야기’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이야기 구성의 미완성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다소 혼란스러운 이야기의 진행이지만 거침없이 흘러가는 줄거리는 매우 흥미롭다. 영화나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중세 기사와 아더왕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를 갖게 하는 근본적 힘과 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