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생활자의 수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2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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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오만하면서도 솔직한 고백  

한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일정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에 들어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그 폭은 대단히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일상을 지배하는 환경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단면적으로 흐르게 된다. 그렇다면 일정한 공간이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까? 그리고 그러한 영향을 어떤 모습으로 나타는 것일까?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는 어쩌면 이렇게 제한된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40대의 남자가 스스로를 '병적인 인간' '극단적인 미신가'로 규정하며 쏟아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극히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이야기에서 고개가 갸우뚱 거리게 하는 측면이 강하다. 도무지 이야기의 중심을 따라가기가 어렵게 횡설수설하는 이야기들이 지하 생활자라는 제목에서 주는 폐쇄적이고 은둔적이며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생각지도 못한 유산을 받고 생활의 근간이었던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서 시작되는 은둔생활은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공무원 생활이 다른 사람과 소통적이었던 것은 아닌 듯싶다. 권위적인 모습 속에서 자기만족적인 삶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종이에 적으면 어쩐지 훨씬 엄숙해지는 것 같다. 종이에 적으면 뭔가 아주 그럴듯해 보이고, 자기비판도 더욱 철저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럴싸한 말도 절로 떠오를 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수기를 쓰고 있노라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다."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수기라는 독백 형식의 독특한 방식으로 써내려간 자신의 이야기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적응하지 못하며 자신만의 성을 쌓고 있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도피처에서 자신을 매몰시키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성찰이라는 것이 사회를 구성하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의도가 스스로를 관계로부터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지하 생활자의 수기]는 스스로가 의도하지 않으면서도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소외되는 느낌을 가지는 현대인들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적응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적극적인 생활보다는 은둔과 도피의 모습으로 보이는 이러한 지하 생활자의 과도한 고백은 시대상황이 변하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달라진 현대에도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강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고 본다. 위대한 작가의 어디에도 걸리지 않은 도발적인 고백은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 시키려는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자신의 자유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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