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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지음, 이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를 대표하는 표상은 무엇일까?
늘 잊고 살아가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무엇 하나 상대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흔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낱말도 역시 상대적이기에 나라는 존재도 너라는 존재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 낱말 안에 담겨있는 이러한 상대적인 개념에 대해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고려하면서 살아갈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자신을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을 둘러싼 온갖 환경에서 벗어나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여행도 결국에 보면 바로 그러한 마음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환경에서 자신을 얽매어 오던 마음의 부담감을 잠시라도 벗어버리고 싶은 그럼 마음 말이다. 더 나아가 지금 내 모습을 대표하고 있는 얼굴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 같지만 그러한 욕망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이기에 늘 허망한 꿈처럼 공허하기만 하다.
[타인의 얼굴]은 바로 그러한 잠재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라고 부르는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을 비롯하여 자신에게 잠재해 있으며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불쑥 나타나 민망하게 만들거나 때론 무기력하게 만드는 그러한 욕망을 가면이라는 타인의 얼굴 모습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부인에게 남긴 자기고백의 성격을 가진 수기형식으로 쓰여 졌다. 세권의 노트에 부인에게 보내는 자기고백을 담은 독특한 형식을 통해 담담하지만 세밀하게 인간 내면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타인의 얼굴]은 일본 현대문학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낸 아베 고보(安部公房)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실종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래의 여자, 타인의 얼굴, 불타버린 지도 중에 한 작품이다. 아베 고보는 유명한 작품을 발표한 여타의 작가들이 그렇듯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만주에서 성장했고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고자 했지만 결국 작가의 길을 택했다.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인간 소외, 정체성의 상실 현대 사회에 직면한 인간의 내면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을 남겼다.
[타인의 얼굴]은 평범한 도시인이 주인공이 실험실 폭발로 인해 남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난 이후 가정과 사회에 속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본래 자신의 얼굴을 잃어 버렸기에 타인의 얼굴을 복재한 가면을 통해 변신을 시도한다. 가면이 완성되자 자신과 타인이라는 혼재된 정체성 속에서 갈등하게 된다. 타인의 얼굴을 가졌지만 그 얼굴로도 여전히 ‘타인’으로 머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자기 부인을 유혹한다. 가면을 쓴 주인공에게 유혹당한 부인에 대한 복수로 자기 고백노트를 작성하여 부인에게 읽게 만들지만 그 노트를 읽은 부인은 사라지고 만다.
[무엇보다도 타인에게 익숙하게 하는 것이 자신을 길들이는 가장 빠른 길임에 틀림없다]
가면이라는 타인의 얼굴로 자신을 포장했지만 그동안 자신의 존재를 대변했던 얼굴을 잃어 버렸기에 자신의 일상에선 낯선 이방인 일수 밖에 없다. 나와 타인을 구분하게 만들지만 또 소통하게 만드는 기본 요소가 나신을 나타내는 얼굴이다. 바로 그 얼굴로 대변되는 소통이라는 것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이 찾아가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다.
‘가면을 벗어버린 맨얼굴’ 이것은 인간이 가지는 욕망의 이중성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자 아베 고보는 기본적으로 욕망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한 인간의 내적 갈등을 가면이라는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억제하고자 했던 의지가 무너지고 욕망이 현실화 되어지는 모습을 통해 자기 성찰로 이끌어가고 있다.
주인공의 가면놀이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부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부인의 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지만 그 부인 또한 이중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면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실이다.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설령 자신은 맨얼굴로 타인을 대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소통이 기 위해서 나와 타인, 양자가 모두 가면을 벗어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성립되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소통이 화두가 되는 세상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있게 하는 타인에 대한 생각,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