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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를 뒤흔든 16인의 화랑
이수광 지음 / 풀빛 / 2010년 3월
평점 :
승자의 나라, 신라의 받침돌 화랑
역사의 기록은 승자에 의해 남겨지지만 그 역시 기록하는 당사자의 가치관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그 실례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러한 기록마저 세월의 부침에 희미해진 오늘날 역사를 재조명하는 일은 그나마 그러한 기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그 해석이 중요하리라. 우리 역사 중에서 전쟁에 의해 고구려, 백제를 통일한 신라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승자의 나라치고는 그리 많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근본적인 힘이 어디에 있었나 하는 점을 찾다보면 의례 화랑이라는 집단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랑의 이름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화랑세기에 생생한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신라를 뒤흔든 16인의 화랑]은 바로 화랑세기에 근거해서 화랑들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혹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참조하기는 했지만 부연설명 정도에 그치는 것은 화랑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지 않은 점 때문이라고 한다.
[신라를 뒤흔든 16인의 화랑]에는 1화랑세기에 기록된 32명의 풍월주 중에서 그 활약이 뛰어난 16인의 화랑 이야기를 화랑세기에 근거해서 저자의 독특한 해설이 담긴 책이다. 화랑이라고 하면 역사시간에 배운 인물로 김유신, 김춘추, 관창 등이 전부지만 이 책을 통해 살펴본 화랑의 세계는 상상을 초월하는 화랑들의 삶이 담겨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화랑은 ‘귀한 집안의 자제 가운데 아름다운 남자를 뽑아, 곱게 단장시켜, 화랑이라 이름 붙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문장에 대해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다면 어떤 해석이 가능해질까? 그야말로 잘나가는 집안의 엄친아들의 모임이라 말해도 그럴 듯 해 보인다.
이 책의 중심 무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전후의 시대다. 그것은 신라가 나라의 기틀을 잡아 내치(內治)에 성공한 시대라는 말일 것이다. 화랑제도는 바로 이 과정에서 완성되었다. 권력이 왕권에 집중되고 이 왕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에서 왕권의 강화와 나라의 미래를 담보할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국가권력의 필요와 부와 권력이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 안정적으로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계승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었던 모임이라는 의미가 강하다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어가며 주목되는 점이 3가지 정도로 집약된다. 그것은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하지 못할 사전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근친간의 결혼이다. 이것은 골품제도의 유지와 왕권의 계승적인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복잡하게 얽히는 관계를 통해 볼 때 과도기적 상황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자유스러운 성(性)의식이다. 근친간의 결혼과 더불어 성의식이 무너졌다는 오늘날과 비교해도 지나칠 정도로 벌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당시 여성들의 지위에 관한 점이다. 정치의 전면이나 또는 막후에서 권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형성하고 있다. 선덕여왕이나 진덕여왕이 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부계와 더불어 거의 동등한 힘을 가진 모계의 힘을 본다.
이 책에서 주목했던 16명의 화랑 중에서 화랑의 상징이라는 위화랑,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익숙한 미실이 사랑한 사다함, 화랑이 신으로 받든 문노, 신국을 꿈꾼 비담, 삼국통일을 완수한 김유신과 김춘추, 너무나 인간적인 화랑 예원 등이 주목된다. 사랑과 권력 앞에서 때론 무너지는 화랑의 사상이었지만 그래도 자신과 화랑의 뜻을 지키며 나라를 위한 삶을 살았던 화랑들이었다.
팩션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무한한 상상력의 가능성과 더불어 혹 간과하지 않아야 할 점이 역사적 사실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신라의 화랑에 대한 이야기를 복원한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화랑세기를 재해석하였다는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심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성과 사랑 그리고 권력을 향한 암투에 머무르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화랑이 가졌던 긍정적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