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기행 - 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
심경호 지음 / 이가서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
지난 봄, 아버님의 평생 소원이셨던 조상들의 묘를 한곳으로 모셔오는 일이 마무리 되었다. 그 한쪽에 자신이 죽어 묻힐 조그마한 공간까지 마련하신 속내를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구석 진한 아픔이 아려오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그 일을 겪으며 이제 돌아갈 자리를 스스로 만드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어설프게나마 짐작하는 바가 있다.

죽음에는 왕후장상이 따로 없다고 했던가? 생로병사에 늘 끌려가는 사람들의 삶이지만 오히려 스스로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선조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먼 상상 속 이야기만은 아님을 확인한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한줄기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 그래서 담담하면서도 당당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오는지 선인들이 스스로 작성한 자찬묘비명을 통해 들여다볼 기회가 있다. [간찰], [한시기행], [산문기행]으로 나에게 익숙한 저자 심경호의 죽음에 대한 사색은 곧 삶에 대한 사색이자 내 안의 숭고함을 되찾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집필한 [내면기행]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직접 쓴 자찬묘비명을 찾아내고 이를 해석해 우리에게 소개하는 책이다. 자찬묘비명이란 자신이 죽어 묻힐 묘비에 담을 글을 스스로 작성한 것을 말한다. 자서전적 성격이 강한 자찬묘지의 종류에는 묘표, 묘지, 만시 등이 있다. 생전에 자신이 죽어 들어갈 묘를 만드는 일을 중국 후한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시대 김훤의 자찬묘지라고 한다.

[내면기행]은 우리 역사에서 발굴한 57명의 자찬묘비명을 모아 ‘이 사람을 보라’, ‘이것으로 만족이다’,‘나 죽은 뒤에 큰 비석을 세우지 말라’,‘웃어나 보련다’,‘죽은 뒤에나 그만두련다’이렇게 다섯 가지 분류로 엮어 놓았다. 이런 분류는 내용에 따른 선조들의 마음을 더 잘 드러내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본다. 성혼, 이정암, 이의현, 서유구, 상진, 박필주, 윤기, 강세항, 남공철, 이유원, 남효온, 임제, 이황, 허목, 정약용 등에 이르기까지 당대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선 익히 들었던 사람들의 글부터 찾아 읽어본다. 곧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저자가 자찬묘지 만을 번역해 놓은 것이 아니라 자찬묘지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그분들의 삶의 행적에 대한 자세한 해설까지 함께 담아두었기에 알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죽음이 곧 삶을 되돌아봄이라고 했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평가에 수많은 시각이 존재할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이해정도나 자신이 처한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이 죽은 뒤 듣게 될 그러한 평가가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바로, 왜 선조들은 스스로 묘비명을 지었을까?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닐까. 죽은 뒤 자신에 대한 오해나 불필요한 찬사, 화려하게 묘를 꾸미는 것을 미리 막고자 하는 마음인 것이다. 그들은 죽음 앞에 당당했고 만족했으며 겸손하고 허탈해 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죽은 뒤에나 그만둘 수 있을 것이라 탄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은 자신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문제이기에 삶에 대한 적극적인 사색이 동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서 뿐 아니라 죽어서까지 자신을 경계하고자 했던 선비들의 올곧은 마음을 보는 것 같다. 이는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지향을 말해주는 것이다. 눈앞의 현실에 메어 아등바등 거리며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속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한때 유서를 미리 작성해 보는 자기개발 프로그램이 있었다. 죽음이라는 극단을 통해 삶에 대한 성찰을 해 보자는 것이리라. 죽음을 통해 절망이아니라 희망을 찾자는 말이다.

내 스스로 묘비명을 짓는다면 남은 시간 어떤 빛으로 채워가야 할지 자신을 돌아보는 깊은 사색이 필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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