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스터리츠 을유세계문학전집 19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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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올라 공간을 만나다
뜻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접할 때 [낯선]이라는 단어처럼 사람의 감정을 적절하게 나타내는 표현이 있을까 싶다. 당황스런 상황,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장소, 예상치 못한 느낌 등에서 오는 이 말이 이토록 강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쩌다 그런 낯선 상황을 즐길 때도 있긴 했었다. 오늘 내가 느끼는 당혹감은 만만치 않다. 처음 접하는 독일문학의 한 작가의 소설이 그런 기분을 준다.

[아우스터리츠]의 저자 W. G. 제발트는 독일문학에서 꽤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그는 1944년 독일 베르타흐의 한 유리 제조업을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독일에서 대학공부를 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앵글리아 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가르쳤다. 2001년 교통사고로 죽기까지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고 각종 문학상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 제발트는 1999년,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에 대하여 왜 독일 작가들은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문제를 제기한 [공중전과 문학]을 발표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제발트의 대표작으로는 첫 시집 [자연에 따라. 근원시](1988년)를 시작으로 산문집 [현기증. 감정](1990년), [무서운 고향. 오스트리아 문학에 관한 에세이들](1991년), 소설 [이민자들](1992년), [아우스터리츠](2001년) 등이 있다.

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 어린이들을 피신시키는 구명운동의 일환으로 영국으로 보내진 한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나라는 사람이 아우스터리츠를 만나면서 그의 과거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목사인 양부모와 함께 [데이비드 일라이어스]라는 이름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던 중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시험에 [아우스터리츠]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과거를 찾아갈 기회를 만들어간다. 그 후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장소나 친부모)에 대해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잃어버린 과거는 시간 개념이지만 그 시간을 현실과 연결시킬 수 있는 매개가 시간과 공간이 함께 머무는 [어떠한 장소]이기에 이 소설은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한 호흡으로는 도저히 읽어가지 못할 긴 문장에 온갖 수사어구를 총 동원한 이 소설은 내용 따라가기가 수월치 않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읽어간다. 소설 속에 나타나는 수서어구를 통해서 바라본 저자의 관심사는 실로 다양하고 깊다. 건축, 역사, 천문, 식물, 광학, 곤충, 조류, 회화, 의학에 이르기까지 전문가 이상의 무엇인가가 들어있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따라가기 힘들어 하면서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나왔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제발트 만의 독특한 글쓰기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을 나타내는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걸까? 책장을 덮으면서도 쉽게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이다.

시간을 거슬러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다는 것은 특정한 경험을 한 어떤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잊혀진 아니면 애써 외면했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 잊혀진 기억을 찾아 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의 과정일 것이다.

이 책을 접할 때 느낀 그 [낯선]이라는 느낌이 처음 접하는 독일 문학이라서가 아니라 제발트라는 작가와의 낯선 만남이여서 그런 것이라 위안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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