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잡영 - 이황, 토계마을에서 시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장세후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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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잡영
이황 | 연암서가

도학자 퇴계의 한가할 때 흥이 나서 쓴 시를 만나다.
이황이라고 하면 근엄한 선비 유학자라는 선입감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이황(李滉, 1501∼70)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부터 풀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런지... 자는 경호이며, 호는 퇴계. 연산군 때 경상북도 안동 도산에서 진사 이식의 여섯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하며 순탄한 관료 생활을 보내던 퇴계는 종 3품인 성균관 대사성에 이른 43세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갈 뜻을 품는다. 이후 세 차례나 귀향과 소환을 반복하면서 고향에서 연구, 강의, 저술에 전념한 퇴계는 50세 이후에는 고향의 한적한 시냇가에 한서암과 계상서당 및 도산서당을 세우고, 그의 학덕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문인들을 가르치며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물러난 후에도 조정에서는 계속하여 높은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거듭 사직 상소를 올려 받지 않았으며 마지못해 잠시 나갔다가도 곧 사퇴하여 귀향하기를 반복하다 70세 되던 1570년 12월 8일 세상을 떠났다.

이황하면 먼저 떠오르는 학자와 선비의 이름으로 이기일원론이니 이기이원론이니 사단칠정론이니 하는 딱딱한 학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잡영’(雜詠)이라고 특정한 내용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일이나 사물을 보고 즉흥적으로 지어낸 시를 통해 접하게 되는 기회가 된 듯하다. 근엄한 유학자의 틀에 박힌 학문에 대한 딱딱한 이야기보다 한가할 때 흥이 나서 지은시라면 이황의 내면에 담긴 이야기라 선비적 이미지는 물론 인간적인 내면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라 할 수 있다.

유학자로서 당대 높은 관직생활에서 막대한 지위를 누렸을 이황의 진면목은 학문의 뜻을 바로 펴고자 했던 선비의 마음과 자연으로 돌아가 그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누리고자 했던 모습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맑은 시냇물과 푸른 산,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 저녁에 뜨는 달, 철따라 바뀌어 피는 꽃, 마음속 그리운 벗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소재로 한 시들이 대부분이다.

누런 책 속에서 성현들을 마주하고서
텅 비어 밝은 방에 초연히 앉아 있네
매화 핀 창으로 또 봄소식을 보나니
구슬 장식한 거문고 보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말게나
[퇴계 이황]

자연과 더불어 살며 학문에 뜻을 둔 학자로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속세의 번잡함을 뒤로한 채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의 소박하고 운치 있는 일상과 나이 들어가며 다 하지 못한 학문의 뜻에 대한 기대가 보인다.

시를 짓던 당시 풍경이 그리지는 듯 한 해석을 반복해서 읽으며 느껴지는 글의 맛이 있고 익숙하지는 않지만 원문 띄엄띄엄 읽으며 찾아볼 수 있는 각주까지 달려있어 더 친근하게 다가서는 책이다. 이 책 [퇴계잡영]과 자매편이라고 하는 [도산잡영]까지 읽어볼 기회가 함께 한다면 퇴계이황의 후반기 학문의 성과와 인간적인 풍모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뜻을 같이하는 벗과 어울리며 그 벗들에 대한 그리움, 선후배 할 것 없이 마음 나누는 이야기에 가슴 따스함이 베어 나는 것은 왜일까? 
이 책은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힌 생활과 현실에 메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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