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염한 아름다움, 모란꽃

雪後寒梅雨後蘭 설후한매우후란

看時容易畵時難 간시용이화시난

早知不入時人眼 조지불입시인안

寧把臙指寫牡丹 녕파연지사목단

눈 온 뒤 찬 매화와 비 온 뒤 난초는

볼 때는 하찮아도 그릴 때는 어렵다네.

세상 눈에 안 찰 줄을 내 미리 알았던들

차라리 연지로 모란을 그릴 것을.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의 시다. "한강 가의 제천정濟川亭 벽 위에 써 붙였던 것이다. 시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세속을 풍자한 뜻이 깊어 오늘날까지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매화와 난초는 너무 고아하므로 힘들여 그려 봤자 알아보는 이가 드물다. 하지만 모란은 그 자태가 농염濃艶하여 그리기만 하면 어린 아이부터 미천한 병졸까지 모두 좋아 한다. 이것이 김종직이 자탄한 까닭이다."

모란에 대한 시로 고려사람 이규보를 따를자가 없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로맨틱한 것은 '절화행折花行이란 작품이다.

牧丹含露眞珠顆 목단함로진주과

美人折得牕前過 미인절득창전과

含笑問檀郞 함소문단랑

花强妾貌强 화강첩모강

檀郞故相戱 단랑고상희

强道花妓好 강도화기호

美人妬花勝 미인투화승

踏破花枝道 답파화지도

花若勝於妄 화약승어망

今宵花與宿 금소화여숙

진주알 맺힌 듯이 이슬 먹은 모란 송이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다가

웃음 담뿍 머금고 님에게 묻는 말이,

“꽃이 예뻐요, 아님 제가 예뻐요?”

서방님은 일부러 장난 치느라

꽃가지 더 예쁘다고 짐짓 말을 하누나.

아가씨는 꽃에 진 것 질투를 내어

꽃가지 짓뭉개며 한다는 말이

“이 꽃이 이 몸보다 진정 낫거든

오늘 밤은 꽃하고 주무시구려.“

*부귀롭고 화려한 꽃의 대명사 모란은 화왕花王이라 한다. 옛사람들이 아껴 뜰에 들여 애지중지하며 가꾸었으며 시로 노래한 작품들이 많다. 모두 모란의 농염한 꽃의 자태와 농욱한 그 향기에 주목한 까닭이리라.

내 뜰에도 가장 많은 개체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 모란이다. 흰색이 주를 이루고 붉은색의 모란도 있다. 붉은색의 농염함 보다 흰색의 단아함 속 깊은 아름다움에 반하여 들여와 가꾸고 있다.

"천향天香과 국색國色을 아울러 갖춘 아름답고 농염한 모란"은 겨우 닷새를 보자고 삼백예순 날을 기다리는 마음까지 훔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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