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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베이징 - 박제가의 그림에 숨겨진 비밀
신상웅 지음 / 마음산책 / 2019년 9월
평점 :
초정에게로 가는 길
옛사람과 그 사람들이 남긴 옛그림에 관심이 많아 관련된 책을 일부러 구해서 본다. 마침 이 두 가지 요소를 다 갖춘 책을 만나 반가움이 앞선다. 박제가, 그 이름 때문에 손에 들었다. '박제가의 그림에 숨겨진 비밀'이라는 부제는 무슨 그림일까. 박제가의 이름이 남겨져있다는 '연평초령의모도'가 그것이다. 그림을 중심에 두고 ‘북학의’의 박제가를 한걸음 더 다가가 볼 수 있다는 점과 '연평초령의모도' 그림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앞선다.
우선, '연평초령의모도'는 어떤 그림일까. 청나라에 저항한 명의 장수 정성공의 어릴 적을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이 그림에 박제가의 화제가 쓰였다. 조선과 청의 불편했던 시대상황에서 명나라 장수를 그렸다는 점과 박제가의 청에 대한 관심 정도를 비추어 언 듯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것 그리고 박제가가 자신이 그렸다는 글까지 남겼으니 그림을 둘러싼 호기심은 한층 높아진다.
“명나라 말엽에 정지룡이 일본에서 장가를 들어 아들 성공을 낳았다. 지룡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성공은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서 살았다. 우리나라 최씨가 일본에서 예술로 노닐다가 이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초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제 최씨는 죽고 그 초고가 내 선생님 댁에 남아 있어 이를 보고 그렸다. 붉은 옷을 단전하게 입고 앉아 있는 사람은 지룡의 아내인 일본인 종녀다.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칼을 차고 놀고 있는 아이가 성공이다. 박제가가 그리고 기록한다.”
이 책의 단초가 되는 화제다. “여러모로 모순적인 면을 띠었다. 이 그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런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 신상웅은 일본의 히라도, 나가사끼, 도모노우라를 거쳐 중국의 취안지우, 양지우, 베이징에 이르는 길을 수 십 년 동안 그림의 흔적을 찾아다닌 결과물이다. 그림 속 단서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만나는 인물들과 지역이 갖는 상징성 등에 박제가와 관련이 된 이야기 모두가 흥미롭다,
‘1790년 베이징’을 중심으로 박제가와 나빙의 만남으로부터 그림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당시 동아시아의 시대상황과 박제가를 중심으로 한 북경 유리창 거리에서 형성된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연평초령의모도’를 통해 박제가의 삶에 한발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된다. 책장을 덮으면서 나에게는 그림의 진위 여부나 얽힌 사연은 중요치 않은 부분이 되었다. 박제가가 27세 젊은 나이에 쓴 글 ‘소전’의 한 구절을 읽으며 국경을 네 번이나 넘나들던 그 모습을 그려본다.
“몸만 남기고 가버리는 것은 정신이요, 뼈는 썩어도 남는 것은 마음이다. 이 말의 뜻을 아는 자는 생사와 성명의 밖에서 그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