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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 - 풀꽃 시인 나태주 등단 50주년 기념 산문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19년 10월
평점 :
너도 그렇다
가을도 끝자락으로 내달리고 있다. 차가워지는 날씨는 옷깃을 여며 몸을 보살피게 하듯 가을은 스스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마음을 살피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차가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가을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도 가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면서 일생을 통해 일궈온 삶의 궤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늦가을 어느 시간을 담담하게 걸어가는 여유로움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의 글을 접한다. ‘풀꽃 시인’이라고 불리는 시인 나태주의 ‘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가 그것이다. 등단 5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발표했던 열권도 넘는 산문집 중에서 가려 뽑은 글들로 모은 산문 선집이다. '시로서 쓸 수 없는 말이 있어' 산문을 쓴다는 시인의 문장 속으로 가을 나들이를 나선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이 시 ‘풀꽃’은 시인이 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학생들과 들꽃을 그리기 모임에서 그 학생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꽃을 서툴게 그려가는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꽃을 잘 그릴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에서 얻은 시라고 한다. 꽃이 그렇듯 학생들 한 명 한 명도 그렇다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이 수필 선집에는 풀꽃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시인의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담겨 있다. 사소한 것, 보잘것없는 것, 낡은 것 등에 관심을 가지며 그것들 속에서 찾아낸 온기가 여기에 담겨 있다.
“꽃들도 필연성을 지니고 피어나는 것이고 꼭 피어나고 싶어서 피어나는 것이다. 해마다 피어나는 꽃이 아니다. 올봄에 피어나는 꽃은 오직 올봄에만 피어나는 꽃이다. 작년에 핀 꽃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꽃이 그렇듯 사람들 역시 필연성을 가진 존재다. 하루하루가 쌓여 일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 꽃피고 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평생 풀꽃을 보고 그 꽃들을 그리며 그 속에서 풀꽃과 교감하며 얻은 꽃의 마음이 시로 나타난 것은 아닌가 싶다. 대상으로 바라만 보는 꽃이 아니라 꽃 속에서 스스로를 찾아내 자신도 역시 꽃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마음이 곧 시인의 마음과 맞닿으리라 여긴다.
가을날 볕의 온기를 전하는 너그러운 사람의 마음처럼 가까이 두고 읽을 때마다 어께를 다독거리는 글이다.태어나면서 받은 백지 한 장에 어떤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때를 건너고 있다. 계절이 가을이듯 삶에서도 가을 어디쯤을 걷고 있는 시인의 마음자리에 꽃 피어 키워낸 향기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