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갖은 글을 만나는 즐거움
"댁의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로 시작하는 글 '매화梅花'을 읽었다. 글이 주는 매력에 읽기를 반복한다. 멀리서 매화 향기가 전해지는 듯하여 문득 고개를 들어본다. 글쓴이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김용준이라는 사람이다.
김용준(金瑢俊, 1904-1967), 동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 한국미술사학자로, 호는 근원(近園), 선부(善夫),검려(黔驢), 우산(牛山), 노시산방주인(老枾山房主人)이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교수,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0년 9월 월북해 평양미술대학 교수,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장, 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근원수필’(1948), ‘조선미술대요’(1949),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1958)등이 있으며, 회화작품으로는 수묵채색화 〈춤〉(1957)이 있다.
‘새 근원수필近圓隨筆’은 2001년에 발간된 근원 김용준 전집 1권으로 이미 1948년에 발간된 근원수필에 스물세 편을 더해 엮은 김용준 수필 완결판이라고 한다. 기존에 발간된 형식을 유지하며 화인전과 같은 미술관련 글을 구분하여 엮었다.
“툭 튀어나온 눈깔과 떡 버티고 앉은 사지四肢며 아무런 굴곡이 없는 몸뚱어리―그리고 그 입은 바보처럼‘헤―’하는 표정으로 벌린 데다가 입속에는 파리도 아니요 벌레도 아닌 무언지 알지 못할 구멍 뚫린 물건을 물렸다. 콧구멍은 금방이라도 벌름벌름할 것처럼 못나게 뚫어졌고 등허리는 꽁무니에 이르기까지 석 줄로 두드러기가 솟은 듯 쪽 내려 얽게 만들었다.”
‘두꺼비 연적硯滴을 산 이야기’다. 이디서 읽었을까. 읽어가는 내내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교과서에 수록된 글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시산방기老枾山房記'에 나오는 문장이다. 감나무 예찬으로 이보다 더 감성적인 글이 또 있을까 싶다.
김용준의 글의 영역은 제한이 없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아주 익숙한 것들이 중심이면서도 전혀 새로운 시각을 선보인다. 친근하여 거부감이 없고 세심하여 새로움을 전해준다. 또한 활동하던 시기의 문화상을 그대로 담고 있어 후대 사람이 글을 통해 시대상을 엿보기에도 충분하다. 또한, 2부에서 접하는 미술과 관련된 글 역시도 수필에서 느끼는 자유스러운 사유의 영역을 확인하게 된다.
“남에게 해만은 끼치지 않을 테니 나를 자유스럽게 해달라.”
근원수필의 발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무엇보다도 자유스러운 심경’으로 살고자 했던 김용준의 마음이 담긴 글을 통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힘을 가진 글이 주는 혜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