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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창
최옥정 지음 / 예옥 / 2016년 11월
평점 :
돌아보면 한순간도 아름답지 않은 날이 없었다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옛글에 관심이 많다. 글을 찾아 읽어가는 동안 만났던 독특한 이력의 사람들이 있었다. 황진이, 이옥봉, 매창, 홍랑 등 신분적 한계를 넘어서 당대에 주목을 받았던 여류시인들이 그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슴 절절한 사랑의 마음을 노래했던 매창에 주목했다.
‘매창’(1573 ~ 1610)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관계’다. 매창을 중심으로 유희경과 허균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이들 관계의 무게 중심을 무엇으로 삼고 이해해야하는가가 그 중심에 있었다. 매창과 유희경, 매창과 허균의 중심엔 여인인 매창이 있다. 이 관계는 보고자 하는 이의 필요에 따라 무게 중심이 각기 달라진다. 매창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심적인 시각은 매창과 유희경에 있지만 한발 물러서서 매창과 허균의 관계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최옥정의 소설 ‘매창’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유희경과의 관계에서의 중심은 매창이 확실하지만 허균과의 관계로 옮아가면 그 중심이 흔들린다. 매창과 허균은 상호 동등하든지 아니면 허균에게로 무게 중심이 약간 이동한 것처럼 읽힌다는 점이 그것이다. 최옥정의 소설 매창도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한 여자가 있었다. 아전의 서녀로 태어나 기생이 되었지만 시와 거문고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 그 이름을 한양까지 떨친 부안의 기생 매창이다. 매창에게 천민 출신의 이름난 여항시인 유희경 찾아온다. 둘은 첫눈에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짧은 만남 후 긴 이별이다. 다른 남자가 곁에 머문다. 은일한 삶을 꿈꾸면서도 현실을 떠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세상과 불화하는 백 년 일찍 세상에 태어난 사람 허균이다. 유희경에게는 소외된 자가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이귀에게는 두루 세상과 노니는 법을 배웠다. 허균에게는 세상에 자기가 가진 것을 내보이고 더불어 변화를 만들어내는 패기를 배웠다.”
“너를 잃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너를 놓아 주었다”는 허균의 말로 매창의 유희경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한다면 작가의 말에서 남긴 “일생 동안 누군가를,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며 산다면 그 삶의 샅에는 죽음의 씨알이 뿌리를 박고 자라고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를 짐작할 수더 있을 듯싶다. 각자가 살아가는 삶의 감당할 몫은 오롯이 제 목숨을 담보로 할 때 기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을 한 여인이 한 남자에 대한 애절함만으로 읽는다면 매창의 삶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으로 그려가는 작가의 마음속에 “이 책이 사랑을 잃었던 사람,사랑을 의심하는 사람, 사랑에 붙들려 있는 사람의 잠을 축내며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행간에 흐르는 무겁고 깊은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만 같은데도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데 유연하다. 작가가 대상에 몰입한 결과가 주인공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글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한다. 간결하고 담담한 짧은 문장이 주는 글의 힘에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