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문선 6 - 말 없음에 대하여 한국 산문선 6
이천보 외 지음, 정민.이홍식 옮김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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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가지는 힘에 대하여 생각 한다

유난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기상관측 이래 온도계의 최고치를 갱신하며 연일 폭염이다비마져 내리지 않은 하늘을 원망하기도 하고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탓하기도 하고 힘없이 물가를 찾거나 냉방이 잘되는 회사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슬그머니 나무 그늘로 들어간다무더위를 피하는 나름의 방법일 것이다그 중에 하나가 마음에 드는 책 한권 손에 들고 바람 잘 통하는 그늘에 않아 책읽기에 몰두하는 것도 좋으리라그래 이유로 고른 책이 한국산문선 시리즈 중 6번째 밀 없음에 대하여.

 

한국산문선 시리즈를 8권부터 시작해서 거꾸로 내려가며 읽는다. 7권을 지나 이제 6권이다순서를 거꾸로 잡은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간 독서 이력에서 친근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 권수부터 읽는다는 것이 그렇게 되었다아직 먼길을 가야하기에 느린 호흡으로 읽어간다.

 

신정하이익정내교남극관오광운조구명남유용이천보오원황경원신경준신광수안정복안석경

 

6권에는 18세기 전반기에 해당하는 영조 연간에 활동했던 인물들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익히 들었던 이름들이 많고 새롭게 관심 가는 사람도 있다그가 누구든 옛사람들의 글 속에 담긴 사색의 행간을 더듬어보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한다.

 

6권에서 주목한 사람은 관직에 취하면(雜設)’을 쓴 정내교(1681~1757)와 말 없음에 대하여(題默窩詩卷後)’를 쓴 이천보(1698~1761)물론 조구명이나 신경준의 글 역시 매력적으로 읽었으나 지금 나의 관심사에 비추어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해 준 이들이 정내교와 이천보 이 두 사람이었다는 의미다.

 

먼저정내교의 잡설雜設은 술 마신 자는 취해도 때가 되면 깬다하지만 벼슬하는 사람이 취하면 재앙이 닥쳐와도 깨는 법이 없다슬프다.” 라며 권력을 잡고 그 안에서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우는 이들에 대한 질타가 사뭇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이 가진 이권을 내놓지 않으려고 꼼수를 쓰는 모습은 정내교가 탄식했던 그것과 한치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천보의 말 없음에 대하여(題默窩詩卷後)’ 는 묵자에 담긴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말 없음은 그저 입을 다문다는 뜻이 아니라 말 속의 의도와 목적을 배재한 투명성을 추구한다는 정민 교수의 해설에 동의한다는 의미에서 유익한 문장이라 공감하는 바가 크다말이 말을 낳고 그 말에 스스로가 치어 사회적 관계를 망치는 사람들이 많은 세태를 비교하면 깊이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산문선을 읽어가는 중 새삼스럽게 주목하는 것은 글이 가지는 힘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삶의 의지를 일상에서 실천하며 그 결과를 담은 옛사람들의 글이 주는 힘을 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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