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티몰레온(BC?~337)
코린트의 군인.
시칠리아를 독재로 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시라쿠사를 비롯한 시칠리아에 민주정치제도를 확립했다.
그는 코린트로 돌아가지 않고 시라쿠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티몰레온과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에 대해 기록하면서, 플루타르코스는 이 책의 저술 목적과 의미를 언급하고 있다.
이들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이 그에게는 특별한 기쁨과 교훈을 주었던 것 같다.

처음에 나는 남을 위해서 이 전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속 써 나가는동안 어느덧 이것은 나의 기쁨이 되었고,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들 위인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미덕은 나의 인생을 비추는거울이 되었고, 나는 나의 생활을 어떻게 고치고 세워 나가야 할 것인가를 배우게 되었다. 나는 매일 그 위인들과 같이 지내며 생활하는 것치럼 느끼며, 차레로 나를 찾아드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대접했다. 그들과 가까이하면서 감동을 느끼고, 그들의 행동에서 가장 중요하고 훌륭한 것을 골라 가지게 된 것이다. 마음을 깨끗하게 수양하는 데는 위인들의 삶을 배우는 이 방법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 P387

내가 역사를 연구하고 전기를 쓰는 이유는 위인들의 선량하고 귀중한 영향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영웅들의 삶을 여기에 옮겨,
우리가 저속한 친구들과 만나면서 얻게 될지도 모를 야비하고 해로운 인상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 P388

인간의 마음은 사실 자기가 가지는 판단이나 품고 있는 목적이 이성적으로증명되어 강한 힘을 얻기 전에는 남의 말에 흔들리기가 쉽다. 행동은 그 자체가 정당하고 깨끗해야 할 뿐 아니라, 행동의 뒷받침이 되는 동기도 떳떳해야만 한다. 그리고 만약 그렇지 못할 때에는 좋게 보이던 것들도 나중에는 신통치 않은 것으로 변하고, 마음이 약해져 자기가 한 행동을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굶주렸던 사람이 일단 탐욕스럽게 음식을 집어먹고 나면 곧너무 많이 먹었다고 후회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해서 마음에 후회가 생기면 고결한 행동도 천하게 변하고 만다. 왜냐하면 행동의 원동력이 되는, 덕성이나 명예 같은 좋은 생각들도 뒷받침되는 것이 없으면 곧 마음 속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면에 지식과 이성에 뿌리를 박은 결심은 비록 행동이 실패로 돌아간다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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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5-18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아니고요,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것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근데 두 권으로 출판사가 주장한대로 완역이 가능했는지... 하긴 편집에 따라 다르니까요.
계속 즐겁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ㅋㅋㅋ

그레이스 2021-05-18 21:47   좋아요 1 | URL
일단 두께로 완역이라고 믿고 싶어요. 구구절절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서 ...중학생들과 낭독으로 읽다시피 하고 있는데 1년은 걸릴듯요.
이제 좀 재미있어 해요.^^

scott 2021-05-19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두꺼운 책을 낭독으로 !!
전 초딩때 축약본을 읽고 뻗어 버렸는뎅 ㅎㅎㅎ

 
긴긴밤 (리커버)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노든과 펭귄은 자신의 바다를 찾았다

자신이 있어야 할 그곳이고 자신의 존재를 빛나게 할 곳이다

그들이 거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든은 긴긴밤 이야기를 하며 분노와 복수심을 사라지게 할 수 있었고, 앙가부는 노든의 이야기를 통해 바깥세상의 아름다움을 듣고 꿈을 꿀 수 있었다. 배려심이란 조금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치쿠는 연민과 사랑을 소유한 펭귄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알 속에서 태어난 펭귄은 치쿠와 윔보, 노든의 희생과 보살핌을 통해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슬프고 외롭고 괴로움에 잠못드는 밤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 때문에 견딜 수 있다. 견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란 코뿔소 노든. 자신이 코끼리라고 생각했던 노든은 서서히 자신이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아원을 떠난다. 혼자 가는 길이 힘들지만은 않았지만 드디어 자신의 모습을 한 코뿔소들을 만나면서 달라진다.

 

혼자서는 코뿔소가 될 수 없었다. 노든이 코끼리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코끼리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코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코뿔소들이 있어야만 했다. 다른 코뿔소들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노든을 코뿔소답게 만들었다

- 22p

 

우리는 홀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든이 길에서 이들을 만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고, 행복한 기억이 된다.

 

때로는 노든이 사냥꾼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는 것처럼 그 행복은 불행을 만들게 되고 전혀 다른 마음과 정체성을 갖게 된다. 슬픔과 분노, 그리고 절망으로 가득찬 긴긴밤을 보내는 존재, 복수심이 삶의 목표가 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노든이 복수심으로 잠 못 이루는 코뿔소가 된 것처럼


동물원에서 만난 코뿔소 앙가부와 이야기를 하며 보낸 긴긴밤은 복수심 말고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있는 아침을 맞게 해준다. 기분 좋은 기억, 아내와 딸과 함께 초원을 달리던 노든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달라고 하는 앙가부가 준 선물이다. 몸을 뒤척이고 절망에 몸부림을 치는 어두운 밤에도 우리는 옆에 있는 누군가 때문에 견딜 수 있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을 소개합니다!’ 

동물원 우리 앞에는 이런 팻말이 붙었다. 코뿔소 뿔 사냥꾼에 의해 앙가부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 남게 된 것 같아도, 우연히 마주칠 누군가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긴긴밤을 함께 보낼 누군가.


전쟁으로 동물원이 폭격당하고 무너진 울타리를 넘어 탈출하는 길에 만난 알을 든 펭귄 치쿠. 함께 하는 길에서의 긴긴밤 동안, 노든은 사냥꾼에게 죽임을 당한 가족과 앙가부에 대해서, 치쿠는 부모 없는 알을 품게 된 사연과 친구 윔보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날 밤, 노든과 치쿠는 잠들지 못했다. 노든은 악몽을 꿀까 봐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날은, 밤이 더 길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이후로도 그들에게는 긴긴밤이 계속되었다

- 56p


치쿠는 기진해서 죽고, 노든은 혼자 남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치쿠가 남긴 알을 보살핀다.


노든은 외로웠다. 그래서 하늘을 계속 바라보았다. 오늘도 긴긴밤이 될 것이다

-76p

 

그리고 알에서 펭귄이 깨어나고, 알에서 깨어난 펭귄이 처음 본 것은 코뿔소의 눈이었다노든의 처음 기억이 코끼리 코인 것처럼.

그렇게 내가 태어났다.(76p) 버려진 점박이 알을 알지도 못하는 치쿠와 윔보가 품어주고, 코뿔소가 보살펴 주는 기적 같은 일들 속에서……. 그리고 코뿔소 노든의 보살핌을 받으며, 바다를 향해 떠난다.

 

코뿔소의 여정에 펭귄의 정체성-바다를 찾아가는 여정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함께 하는 긴긴밤 동안, 펭귄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찾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노든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게 주었다. 내가 아프거나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악몽을 꾸지 않는 방법이라며 옛날 얘기를 해 주었다. 나는 노든의 가족과 코끼리들, 앙가부, 치쿠와 윔보의 얘기를 들으면서 밤을 견뎠다. 그러다가 내가 잠이 들면 노든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

-83p

 

그러나 서로 각자의 모양이 다르고 살아온 시간이 다르듯, 항상 같은 생각과 마음을 품을 수만은 없는 법이다. 그들 사이에도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함께 밤을 보내지만,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말없이 긴긴밤을 넘기는 시간도 있었다.

 

이름을 지어달라는 펭귄에게 노든이 한 말은 자신이 찾은 존재에 대한 생각을 전달해 준다.

 

날 믿어. 이름을 가져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나도 이름이 없었을 때가 훨씬 행복했어.”

- 99p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은 내가 아닌 것이다. 코뿔소는 뿔이 자랄 때 간지러움을 느끼고, 초원을 바람처럼 달릴 때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것이 노든의 정체성이다.

 

나는 나로 존재하는 것이다. 점박이 알에서 태어나고, 코뿔소가 키우고, 호수에서 수영을 배우고, 긴긴밤 이야기를 하며 길 위에서 발견한 나. 살아남은 나.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되었지만 복수를 할 수 없는 흰바위코뿔소와 불운한 검은 점이 박힌 알에서 목숨을 빚지고 태어난 어린 펭귄이었지만,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

- 104p

 

살아남아서……노든은 코뿔소의 바다인 초원에 펭귄은 자신의 바다에 도착한다.

 

이 책은 어린이문학상 대상 작품이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고통과 두려움, 환희를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이라고 소개한다.


긴긴밤을 뒤척이며 잠 못 드는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잠 못 드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을 그리고 잠 못 드는 마음이 계속해서 맴을 도는 생각의 자리를. 누군가 옆에 있어도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다면 그 불면의 밤은 혼자만의 것이다.


그저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질 수도 있고, 누군가는 어둠이 걷힌 아침을 맏이 할 것이다. 부디 그 누군가가 함께 하기를…….

 

아이들에게도 그 누군가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울컥울컥 했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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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18 14: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코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코뿔소들이 있어야만 했다.‘ 오늘따라 정체성에 관한 글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따뜻한 글이었겠어요~♡

그레이스 2021-05-18 14: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정체성찾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생각할 많은 지점이 많았구요. 여전히 정체성을 향한 여행중이고, 잠못드는 밤도 경험하고 있어서...^^

mini74 2021-05-18 18: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물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눠주는 누군가, 참 소중한 존재죠.

mini74 2021-05-18 18: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물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코끼리고아원 전쟁 멸종위기 ㅠㅠ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눠주는 누군가, 참 소중한 존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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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19 0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림책 좋아하는데
숀텐과 크리스 반 알스버그
또 몇명있는데 한국어판이 출간된적이 없네요 ^ㅅ^
 

1장.작가이야기
1.
반 고흐,
예술가 신화의 탄생

반 고흐는 뜻하지 않게 논쟁에 휘말렸다.
˝작품은 두번 태어난다.˝는 말은 언제나 진리다.

반 고흐, <한 켤레의 신발>에 관한 논쟁.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의 근원에서 고흐가 그린 구두를 ‘농민 여성의 구두라고 말하면서, 한 켤레의 구두일 뿐인 것 같지만
‘대지의 침묵하는 부름, ‘무르익은 곡식을 대지가 조용히 선사함‘,
겨울 들판의 황량한 휴경지에서의 대지의 설명할 수 없는 거절‘,
더 나아가 빵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 대한 불평 없는 근심‘, 궁핍을 다시 넘어선 데 대한 말 없는 기쁨‘, ‘출산이 임박함에 따른 초조함 그리고 죽음의 위협 속에서의 전율이 모두 이 신발에 스며들어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예술 작품은 ‘존재자의 존재를 열어 보여 주는 것‘, 즉 진리가 작품 안에서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이때 하이데거가 말하는 진리란 재현의 진리가아니라 근원적 진리의 현시를 의미한다. 예술 작품 안에서 진리가발생한다는 생각은 우선 예술을 형식적인 유희로 바라보는 형식미학과 예술 작품이 세계의 겉모습을 재현한다는 이론에 근원적으로반대하는 것이다. 또한 예술적 진리의 발생은 예술가의 의지를 초월해서 드러나는 것으로, 자연과학에서 담보하지 못하는 본원적인 진리가 작품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여겼다. - P34

또한 하이데거가 예술 작품을 통해 진리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예술가의 존재를 부차적으로 생각한 반면, 샤피로는 구두를 반고흐 자아의 표현으로 이해하면서 예술가의 주체성‘ 문제를 전면에내세우는 모더니즘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 대목에서 진중권은 하이데거가 거부한 모더니즘 미학을 샤피로가 다시 옹호하는 것이라고지적한다. 그리고 그 배면에는 ‘대지‘라는 표현에서 감지되는 하이데거의 근대 사회에 대한 거부와 보수주의를 향한 샤피로의 저항이깔려 있다고 보았다.
- P35

데리다는...반면 두 구두가 짝이 아니라 동일한 쪽의 반복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상사(相似, similitude)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실 샤피로의 논의는 재현론의 틀 안에, 예술의 주관성이라는 틀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현시의진리를 구하면서 재현론의 틀을 넘어서려고 했지만, 진리를 그 중심에 둠으로써 예술 작품을 어떤 근원적인 진리로 환원시킬 가능성을 남겨 놓았다. 데리다는 이런 환원주의적인 태도의 독단성을 경계했다. 데리다의 견해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오직 차이 속에서 의미를 연기(delay)시키며 산포되는 텍스트의 유희일 뿐이라는 것이그의 주장이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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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5-15 1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조금씩 읽어가려고 했는데 계속 읽게 됩니다.
나의 독서는 오늘도 의식의 흐름대로...^^
현재 읽고 있는 책이 몇권인지 모르겠어요.@@

scott 2021-05-15 17:19   좋아요 2 | URL
저도 현재 읽고 읽는 책이 킨들+스맛폰+종이책
도대체 몇권도 완독 하지 못하고 오늘도 장바구니 탈탈 ㅎㅎㅎ

이책 예전에 어떤 신문에 기고 했던 글인데
언급된 책들 중에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서
이책 한번 읽으면 서점속 개미지옥으로 Go~Go~

그레이스 2021-05-15 17:2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알라딘에서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하나씩 넣고 있어요 ㅋㅋ

서니데이 2021-05-15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주 더웠는데, 비가 내리는 주말입니다.
좋은 책 읽는 즐거움과, 편안한 휴식이 있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05-15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 서니데이님도 편안하고 행복한 주말되시길 바래요
 
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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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진은 그 아이들을 낳고서야 세간이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모성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 새벽에 간호사가 혼곤히 잠든 한영진을 깨워 수유실로 들여보낸 뒤 가슴에 아기를 안길 때마다 모멸감을 느꼈다. 한영진은 그 아기가 낯설었다. …… 아기가 젖꼭지를 제대로 물지 못해 빨갛게 질려 울어대고 그게 산모의 문제인 것처럼 간호사들이 한마디씩 충고할 때마다 한영진은 좌절했고 다시 분노했으며 죄책감을 느꼈다. 모든 게 끔찍했는데 그 중에 아기가, 품에 안은 아기가 가장 끔찍했다. 그 맹목성, 연약함, 끈질김 같은 것들이. 내 삶을 독차지하려고 나타나 당장 다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타인, 한영진은 자기가 그렇게 느낀다는 걸, 그렇게 생각 한다는 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영진은 스스로를 모성이라는 게 결여된 잘못된 인간이라고 여겼고 ……

73p


한영진은 갓난아기와의 간격이 조금 벌어진 뒤에야 아이를 유심히 보고, 가엾게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인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죽음과 같은 출산과 그 출산이라는 것에 딸려오는 여성에게 씌워지는 의미와 구속들. 보편적이고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다가오는 구속들. 그러나 저 마음의 밑바닥에서 부정하고 저항하고 있지 않는가? 집단의식의 폭력 앞에서 들키지 않으려 하면서 얼굴을 굳힐 뿐이지. 강요된 모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한 인격으로서의 여성에게 폭력적이다. 그 폭력은 은근하게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올 때가 많다.

아이와 간격이 벌어진 후에야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에 공감한다.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 분신, 피붙이…… 이런 말들이 이기적이고 본질에 덧입혀진 모성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 생명, 내가 보호하고 사랑해 주어야 할 생명 속에 나를 닮은 모습이 발견될 때 경이로움, 신비를 경험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강요되고 맹목적인 모성에는 아이에 대한 존중은 결여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순일.

한국전쟁 때 비극을 맞이한 가문에 홀로 남은 여자 아이였다. 그의 기억 속에는 마당 눈더미 속에 던져진 자신을 안아 올리던 어머니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 다섯 살 때 동생을 업고 어른들을 따라 도망치다 논두렁에 남겨졌던 외로움과 막막함, 동생 은일을 화상으로 죽게 했다는 죄책감, 외가에서 받은 부당한 상황으로부터 도망쳤다가 끌려와 당한 수모, 탈출을 위한 결혼 등이 뒤섞여 있다. 이순일은 자신의 아이들인 한영진, 한세진, 한만수가 그 일들을 이야기로도 겪게 하기 싫어서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들만은 이런 어려움 없이 살아가길 바란다.

아이들이 잘살기를 바랬고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는 잘 몰라서 그런 꿈을 꾸었다고 되뇌인다. 이순일은 아이를 낳고 맞벌이를 하고 있는 큰 딸 한영진이 사는 건물로 이사를 한다. 두 집 살림을 돌보면서 고단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순일은 딸들에게 자신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낀다.

그의 바람처럼 딸들은 잘 살고 있는가? 여전히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는 이순일이 살았던 여자로서의 고단함이 되물림 되고 있다. 보여 지는 게 달라졌을 뿐.

이순일의 불행은 전쟁이나 이념갈등, 가난보다는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겪은 것이다. 삶의 형편이 나아진 현재, 딸들이 겪는 갈등은 모습은 다르지만 문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영진이 감당해야 할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요구되어지는 삶의 태도가 그렇다. 모성과 유부녀로 규정 지어진 삶. 생각은 하지만 그저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습관이 된 방식들이 그녀를 가두는 것 같다. 아버지에게 남편에게 ……


한영진이 생각하기에 생각이란 안간힘 같은 것이었다. 어떤 생각이 든다고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버텨보는 것. 말하고 싶고 하고 싶다고 바로 말하거나 하지 않고 버텨보는 것. 그는 그것을 덜 할 뿐이었고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70p


한세진은 그러한 삶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삶 곳곳에 엄마 이순일이 겪었던 폭력과 수모는 여전하다. 그녀의 친구 하미영의 삶이 그랬고 미국에서 살다 죽음을 맞이한 이모할머니의 삶이 그랬다. 미군과 결혼해 이주해 살았던 이모할머니의 삶에 그 그림자가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포들 사회에서 규정지어지고 평가된 여자로서의 그녀는 불행했다.

뉴질랜드에서 가끔 들르는 동생 한만수는 말한다. 그곳은 여자들에게 살기 좋은 곳이라고…….

과연 그럴까?

연년세세! 우리가 사는 집단 안에 흐르는 정신이 도도하다. 그 안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한영진처럼 말이나 행동보다는 생각하는 것으로 버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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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1-05-14 21: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영화 <미나리>에서 부인이나 할머니의 시선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 다면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봤습니다. ^^

그레이스 2021-05-14 21:43   좋아요 3 | URL
그러네요!

mini74 2021-05-14 22: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성을 꼬박꼬박 붙여 이름으로 서술되는게 인상깊었어요. 가장 가까운 듯 하지만 사실은 서로를 참 모르는 게 가족이고 그런 거리감이 느껴지는 장치같았거든요 *^^*

그레이스 2021-05-14 22:17   좋아요 3 | URL
그런 의미가 숨어 있었겠군요.
그러네요.

scott 2021-05-14 23:47   좋아요 2 | URL

저도 이름이 아닌 성까지 언급되어서 독자들이 읽을때 가족 구성원 끼리도 서로 다른 개인 이라고 느꼈네요
드라마, 미니 시리즈로 만들어지면 좋겠어요